도댓불_ 용천수, 어쑤굴라한 그 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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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_ 용천수, 어쑤굴라한 그 물맛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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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팡에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허다했지만
그 누구도 재촉하는 일이 없었다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덥다. 너무 더워 차라리 햇볕은 따갑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하다. 이런 날이면 어렸을 때 사철 시원한 용천수가 솟는 동네 물통에 풍덩하고 뛰어 들고 싶다. 
더운 여름날, 풀벌레 소리와 풀 섶이 맨살에 닿아 간질이는 소롯길 따라 어머니와 함께 물통으로 갔다. 오가는 발길로 물통을 향하는 길은 하도 밟아 반질반질할 정도였다. 커다란 바위와 돌로 둥그렇게 쌓아 만들어진 내가 살던 동과양 물통에 들어서면 물은 세 곳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입구엔 빨래를 하는 곳이고, 가운데엔 과일이나 야채를 씻는 물통이며, 맨 안쪽에는 시원한 용천수가 늘 솟아 식수로 쓰는 물통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 물통 앞에서 놀다가 고무신에 그만 물이 들어가 발이 질퍽거리자 헹궈내려고 물 한 바가지 떠서 발에 끼얹다가 어머니께 혼난 적이 있다. 그 씻은 물이 과일과 채소를 씻는 아래쪽 물통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처럼 안내문이 없어도 누구 한 사람 이 규칙을 어기는 이가 없었던 것 같다. 외지에서 어쩌다 이사를 오거나 해도 흐르는 물줄기 따라 맨 끝에는 빨래를, 가운데에선 채소나 야채를 씻고, 맨 앞이 되는 위쪽에 위치한 물은 마시는 물인 것을 다 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공동체 생활을 다 알고, 또 그에 맞게 알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 입을 쩍 벌리며 기지개를 켜는 이른 새벽에도 어머니께선 벌써 몇 차례의 물을 허벅으로 길어 물 항아리를 그득히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안에 행사가 다가오면 항아리 몇 개에 물을 채우는 일도 큰 일 중 하나였다. 먹고, 씻는 모든 물은 용천수가 솟는 물통에서 이렇게 길어다 해결했다.
어머니는 빨랫감을 모았다가 대나무로 엮은 질구덕에 담아 등에 지고, 나는 양은세숫대야에 물마께라 부르는 네모진 나무에 손잡이를 깎아 만든 빨래 방망이를 넣고, 그 위에 어머니의 흰 코고무신과 내 꽃신을 담아 달랑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물통으로 향했었다. 크고 둥그렇게 돌담으로 쌓아 놓은 입구를 따라 몇 개의 돌계단을 밟고 내려선다. 첫 번째 만나는 물통에서 먼저 와 빨래를 하고 있는 동네 애순이 어머니, 신자 어머니, 윗동네 영수 어머니, 알동네 경출이 어머니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다.    
빨래를 하느라 손은 쉼 없이 움직이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기도 하고, 때론 ‘매께라, 아이고 경했구나게?’ 하며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아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진지해지기도 한다. 물통은 단순히 물을 퍼서 먹고 쓰는 곳만이 아니라, 이렇게 동네의 크고 작은 대소사며 동정을 알리고 또 정보를

제주의 용천수 - 김녕리 청굴물                                 / 사진 임관표 기자
제주의 용천수 - 김녕리 청굴물                                 / 사진 임관표 기자

교환하고 도타운 정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물허벅을 진 어머니를 따라 나도 같이 짊어지고파 며칠을 졸라댄 덕분에 대바지라 부르기도 하고 애기허벅이라고도 하는 물허벅과 똑같게 생겼는데 크기만 작은 것을 이웃에서 하나 빌려다 주셨다. 내 키에 맞는 그것을 지고 내가 어머니가 된 것처럼 마냥 좋아 물 길러 따라 나섰던 적이 있다. 대바지는 몸체가 작으니 주둥이도 좁아, 물을 긷다보면 들어가는 물의 양보다 버려지는 양이 더 많았다. 그 작은 용기에 물을 채운다한들 얼마나 되었을까. 떼를 쓰기도 했지만 물 긷고 오가는 길에 길동무도 하고, 말동무도 하고 싶어 마련해 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먹는 물통 옆에는 물을 허벅에 길어 담은 후 질빵이라 부르는 긴 끈을 등과 어깨에 맞추어 짊어지기 편리하게 허리께쯤 높이의 네모지게 평평한 돌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물팡이라고 부른다. 물팡 위에 질빵으로 위치를 맞춘 후, 물구덕이라 하여 물이 담긴 허벅을 넣으면 그 무게에 밑이 빠지지 않게 받쳐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 있다. 그것에 물구덕 보다 조금 넓고 길게 대통을 커다랗게 쪼갠 후 엮어 붙여 놓았다. 
움직일 때마다 출렁대며 흘러내린 물을 빠짐이 좋게 아예 구덕과 함께 하나가 되게 엮어 만든 것이다. 물이 담긴 허벅을 물구덕에 넣은 후 짊어지고 오는 것이다. 물 긷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물팡을 사용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허다했지만 그 누구도 빨리하라거나, 늦다는 등 재촉하는 일이 없다. 용천수의 흐름처럼 자연에 순응하고, 순리에 따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어느 해 달빛이 온통 밝은 날, 우리 집 앞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호박만한 달덩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을 긷고 동네 아주머니와 함께 물통을 에둘러 쌓은 돌담 그림자를 가리개로 의지 삼아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둥실 뜬 달빛이 온통 물통으로 쏟아지며 반짝이는 윤슬이 흐르는 물속에서 별이 쏟아지듯 물길 따라 곱게 흐르고 있었다. 아까 우리 집 마당에서 본 달이 동과양 물통에도 와 있었다. ‘어머니! 아까 우리 마당에도 저 달이 있었는데 왜 자꾸 우리만 따라오멘?’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묻자 ‘에에, 지지빠이가 좀좀허영 확확 글라’시며 물음에 대답은 없고 걸음만 재촉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돌아오는 길에서 왜 자꾸만 우리를 쫓아왔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던 그 커다란 달도 하늘가 어디쯤에서 눈 맞춤을 할 것만 같다. 50년을 훌쩍 넘겨 이순을 넘긴 이 나이쯤에도 물통에서 어머니와 더위를 쫓으려 빨래를 하고 난 후, 목욕하며 바가지로 용천수를 끼얹을 때마다 ‘어쑤굴라, 어쑤글라’하시던 어머니 음성이 그립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물이 펑펑 쏟아지는 편리한 세상이다. 이런 세월을 보내면서도 ‘덥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지르는 날, ‘어쑤굴라’ 하던 용천수의 시원한 물맛 위로 기억 속 어머니의 음성이 그때처럼 들릴 듯하다.
내 어릴 적 추억은 고스란한데 보고 싶은 어머니와 추억 속의 물통은 그 자리 어디쯤만 기억될 뿐 어디에도 없다. 물통 그 아래쪽 언저리에 미나리 밭이 있었다. 지나칠 때마다 ‘어깨동무 내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하는 노래를 부르며 폴싹 앉았다가 일어서며 보았던 그 많던 미나리 밭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유년 용천수에 대한 추억은 50년이 지나도 여전한데, 오늘처럼 더운 날이면 유년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서늘하도록 시원하던 용천수에 발 담그고 앉아 이 더위를 잊고 싶다.  

*2018년 제주도정지 '여름'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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