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제주넘기 - “탈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실존적 개인의 치열한 생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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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제주넘기 - “탈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실존적 개인의 치열한 생존 기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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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첫 문장이 강렬하다. 여름, 드디어 독서의 계절이 왔다. 밖이 더울수록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을 에어컨 아래에서 읽으면 피서로 그만이다. 이 책  《파친코》 는 이미 알려진 대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를 만큼 작품성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전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9년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소설의 첫 구절을 인용하며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세대의 삶이 보여주는 정체성의 탐구와 성공을 향한 과정”을 다룬 소설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세계인이 널리 보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드라마가 되어 더욱 궁금한 소설이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첫 문장에서 강조한 것처럼 탈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실존적 개인 가족의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다. 예를 들자면  《파친코》 는 이미의 주된 시공간 배경은 1930년부터 80년까지의 일본이지만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일본의 항복 선언, 1964년 동경 올림픽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전면적으로 나오지 않고 그냥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풀어놓는 작가의 시선이 여러 생각거리를 준다. 구한말부터 1980년대까지 대략 90년에 걸친 긴 기간의 이야기이다. 시간의 길이와 분량만큼 등장인물도 많다. 부산 영도에서 살던 기형아 훈이의 딸 선자를 중심으로, 그녀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의 아들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준다. 작가는 한국계 1.5세대 이민진으로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시작은 작가가 1989년 예일대 재학시절 참석한 강의이다. 일본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들은 그곳의 한국인들이 심한 차별을 받아왔으며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소설 속에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를 돌아보며 "아이들이 어떤 다른 아이들을 순수하게 민족성(ethnicity)과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 생각을 계속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2007년 도쿄로 발령난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살게 되면서 재일한국인 수십 명과 인터뷰를 하고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작가는 한국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파친코는 재일한국인의 경제적 자립의 원동력이면서 부정 폭력의 온상이란 인식이 강해 재일한국인 사회에서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 자체가 금기다. 그런 파친코는 이 소설의 제목이면서 주요 작중인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매체이다. 중요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던 금기를 제목으로 택하는 용기, 작가가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뼈아픈 역사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했고 자이니치라는 존재를 알게 했다. 자이니치란 일반적으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전 일본으로 건너와 "특별영주자" 자격을 가지고 살고 있는 한국계 거주자를 의미한다. 자이니치는 국적을 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한국계 거주인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일본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외국인도 아니다. 자이니치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생각처럼 멀리 있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건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유도 선수 안창림이다. 일본의 귀화 유혹을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단 안창림은 ‘자이니치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하는 것도 선수인 자신의 사명’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안창림을 비롯한 많은 자이니치가 왜 일본에서 차별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는가.  《파친코》 는  그에 대한 답을 4대에 걸친 가족과 그 주변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소설로서의  《파친코》 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구성도 평이하고 주요 캐릭터의 입체성이 뛰어나지 않다. 사건의 개연성, 구성의 참신성도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갖는 힘이 있어 끝까지 읽게 만든다. 다른 나라 낯선 땅에 들어와 산다는 사실이 불러 일으키는 넓은 공감대. 아시아 이민자가 아니어도 남미,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이 소설을 읽은 후기에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다, 우리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눈물을 쏟으며 찬사를 보낸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자이니치의 일본 고생담, 정착기이지만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점이 보편성을 갖는다. 작가 이민진은 역사전공자답게 평범한 한 개인 가족의 강인한 생존 과정이 역사의 큰 줄기와는 상관없이 흐른다는 것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한국인의 이야기이지만 정작 한국인이 보면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 정서적 깊이가 조금 아쉽다. 깊이보다는 넓이가 미덕인 소설이다. 그래서 읽어야 할까? 물론이다. 재미있다.

                         / 글·수월심 김현남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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