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8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 작품 - "부처님을 모시고 온 세월 50년..."
상태바
2022년 제8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 작품 - "부처님을 모시고 온 세월 50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26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떻게 절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부처님,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며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때부터 나는 진정으로 부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나의 법명은 근수성 보살이다. 올해 나이 78세, 부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50년이다. 잠을 자다보면 꿈속에서 아기를 업고 무쇠솥에 밥을 짓는 꿈을 꾼다. 어느 날은 산길을 걷고 또 걸으며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꿈을 꾼다. 그러다가 놀라서 깨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동적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몇 번씩 염불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시 잠에 들게 된다.  
나는 스물여섯에 남편을 만나 1남 4녀를 낳고 남편과 식당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주 빌었다. 결혼하고 첫 아들을 낳자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다. 이후 연년생으로 딸을 낳았고, 아들 하나만 더 낳자는 바람으로 낳다보니 줄줄이 딸을 4명 더 낳았다. 아들은 하나라서 더없이 귀하게 키웠다.
아들이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일이다. 갑자기 잘 걷지 못하고 풀썩풀썩 주저앉았다. 힘이 없어 수저를 들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 아들을 들쳐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녔다. 급기야는 고열이 나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제주시내 모병원에서는 뇌수막염 또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기암을 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정신이 반쯤 나갔고 어쩔 줄 몰라 그저 눈물만 나왔다. 이런 나에게 시누이가 “아들을 위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시누이의 도움으로 정성껏 불공 준비를 해서 스님을 집으로 모셔서 몇 시간 동안 불공을 드렸다.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어떻게 절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부처님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 살려 주세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며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 나도 모르게 나왔고 눈물이 계속 흘렀다.
불공이 끝나고 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데 발길이 잘도 가벼웠다. 신기하게도 아들의 고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자 아들은 일어나 앉을 수도 있게 되었고 차츰 손이랑 발에도 힘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진정으로 부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퇴원한 아들은 더욱 건강을 되찾았고 성인이 되고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공무원도 됐다. 지금까지도 아들딸 낳아서 잘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간암으로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부부로 사는 동안 구두쇠인 남편이 못마땅해서 많이 투닥거렸다. 자식들이 다 커서 자리 잡고 사는 좋은 모습을 못보고 간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내가 불교대학에 들어가서 불법을 배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자, 하늘나라로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측은지심이 제일 많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남편이 저세상에서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부처님께 남편에 대해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된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 깨달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봉사하며 사는 것이 나의 기쁨이고 살아가는 힘이다. 
70을 넘긴 평온한 나의 삶에 갑자기 큰 시련이 찾아왔다. 결혼한 지 10년 된 막내딸네 일이다. 사위가 갑자기 짐을 싸서 집을 나가면서 별거 생활이 시작됐다. 그 후 1년쯤 지났을 때 이혼요구 소송이 들어왔다. 막내딸네는 스무 살 대학 때 만났고 사위가 딸을 엄청 좋아하고 공을 들였고 성격도 무난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사위를 믿고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그런 사위가 집을 나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단순 권태기나 회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 했다. 
이혼 소장이 날아오자 나는 막내딸과 함께 사위가 살고 있다는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무슨 이유인지나 들어보려고 찾아갔는데 그곳에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두 눈으로 목격하자 나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이 떨리는 수전증도 생겼다. 내 몸과 마음이 이 정도인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모습을 본 딸의 마음은 오죽할까? 딸은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못 잤다. 간수치가 오르고 자다가 벌떡 깨는 일이 허다했다. 이러다가 딸이 큰 병이라도 생길까 봐 나도 걱정으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막내딸에게 나는 아침 기도를 하러 다녀보자며 딸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조그만 암자를 만났고 딸에게 여기 암자에 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자고 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나는 딸과 함께 1주일에 한번 씩 암자를 찾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겨울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해가 뜨지 않아 아직 어두운 길이었다. 딸과 함께 작은 후레쉬를 비추며 어두운 눈길을 걷는데 오싹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후레쉬를 비춰보니 나무사이에 노루 한 마리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의식중에 “산왕대신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도 모르게 염불을 말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산길을 내려 올 때까지 든든했다. 부처님이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3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양을 다니다 보니 딸은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엄마인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내가 이 세상에 없게 되면 불쌍한 막내딸은 어떻게 하지? 막내딸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딸이 ‘시련을 잘 견디고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십시요’ 하고 부처님께 매일 기도했다. 그렇게 딸과 함께 마음 수양을 다니다보니 어느덧 막내딸은 두 아이의 엄마로서 기운내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진정한 엄마로 우뚝 섰다. 
나에게는 곧 100살이 되는 친정어머니가 있다. 나도 나이가 있어 그동안은 여동생이 친정어머니를 모셨다. 동생도 무릎이 안 좋아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면서 친정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후 코로나가 성행하면서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내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불효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서 천불이 났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할 일이 필요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을 했다. 요양보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도움을 주는지? 에 대해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해보니 요양보호사는 ‘천사’들이고 관세음보살이다. 노인환자들의 욕구를 잘 들어주어야 하고 웃음을 잃지 않아야 그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양보호사 일을 공부해보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덜어졌다.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수강생이고 큰언니로 통했다. 어려운 이론도 공부하면서 실기공부도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내가 자격증 시험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용어들은 어려웠고 밤에는 눈이 침침해 문제집을 잘 볼 수도 없었다. 컴퓨터용 답안지에 체크하는 것도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할 수 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여러 번 말하고 나면 용기가 생겼다. 딸들에게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딸들은 기출문제집을 사다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도와주었다. 마침내 시험 날에는 청심환을 먹고 가서 시험을 봤다. 다행히도 합격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나이가 80이 다 돼서 자격증이 왜 필요하냐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용기 있게 도전했고 마침내 자격증을 받게 되는 기쁨을 맛봤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도 “도전하는 것은 즐거움이고 행복이다”라고 말하면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 
최근 코로나가 잠잠해져 친정어머니를 보러 요양원에 다녀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서 잘해주시는지 어머니의 얼굴에 살도 붙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또 절로 기도가 나왔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부처님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모든 인연들이 행복하게 보살펴 주소서. 행복이란 내 안의 내 자신이 행복입니다. 저는 모든 업을 내려놓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봉사하며 사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고 기도한다. 그리고 삼배를 올린다. 기도를 올리고 나면 나의 마음이 행복해진다. 

/강인자 불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