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성지 순례기② - 불보살님의 가피는 내 노력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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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성지 순례기② - 불보살님의 가피는 내 노력의 결과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7.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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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계속)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알게 된 내용인데 파킨슨병의 여러 증상 중에서 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종종걸음’이라고 불리는 구부정한 자세와 불안정한 걸음걸이라고 한다. 이 보살님 역시 종종걸음을 걷고 있으며 두 걸음을 앞으로 가면 뒤로 한걸음 물러나기를 반복하였고 그럴 때마다 사고로 이어질까 보는 내내 나의 가슴은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앞에서 이끌고 계신 처사님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보살님의 손을 꼭 붙잡고 왼발 오른발을 반복하여 외치며 울퉁불퉁하고 비뚤배뚤 놓인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대여섯 걸음도 못 가서 쉬어야만 하였다. 
“일단 배낭을 벗어 저에게 주시면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내가 처사님께 말씀드렸더니 한, 두 번쯤 사양하시더니 이내 배낭을 벗어 나에게 넘겨주셨다. 배낭은 이미 처사님의 땀으로 흥건히 젖어 물이 배어 나올 지경이었다. 
보살님은 우리를 만나고 나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계속하여 반복하셨다.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잠깐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시면서 보살님은 부담스러운지 걸음에 속도를 내는 듯하였다. 그럴 때마다 몸은 중심을 잃고 자꾸 넘어지려하였고 처사님 또한 보살님을 붙잡느라 위험한 상황이 여러 번 발생하였다. 이러다가는 전부가 위험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내려온 동료가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을 본인이 메고 먼저 봉정암으로 올라가겠다고 하였다. 배낭이 없으면 한결 수월할 것 같아 좋은 생각이라며 동료에게 배낭을 넘겨주었다. 계속해서 처사님은 보살님을 앞에서 이끌고 내가 뒤에서 받치면서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계곡 위를 향하여 올라갔다.  
잠깐 쉬는 동안 처사님께 여쭈었다.
“성치도 않으신 보살님을 모시고 어떻게 위험한 길을 오셨습니까?” 
“우리 집사람이 봉정암 참배하는 것이 평생 소원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면 자제분들은 두 분께서 여기 오신 것을 아시나요?”
“애들한테 얘기하기는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며 화제를 얼른 다른 쪽으로 바꾸셨다. 
짐작컨대 자제분들과는 무슨 사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고쳐 앉은 처사님이 “이왕 이렇게 되고 보니 이야기하고 가야겠다.”고 하시며 “전북 장수에서 18일 새벽 5시에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봉정암을 설정하고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대로 봉정암을 향해서 무작정 길을 떠났다”고 하셨다. 물론 사전에 봉정암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두 분도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이렇게 험한 길이란 것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라고 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운전해서 가는데 평소에 내가 알고 있는 길이랑 많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주유소에 가서 핑계에 기름도 넣고 주유소 직원에게 직접 길을 물어보고 내비게이션에 다시 봉정암으로 설정해서 가는데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야 할 건데 자꾸만 남쪽 방향인 대전 쪽으로 내려가라고 안내했어요. 이상하다 싶어서 이번엔 톨게이트 직원에게 물으니 길을 잘못 왔으니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차를 돌려 다시 오던 길로 가는데 한참 가다보니 이번엔 홍천 방향인 거예요. 아차, 또 잘못 가고 있다는 판단이 든 거죠. 그때야 생각 난 것이 백담사였어요. 내비게이션에 백담사를 입력하고 어렵고 힘들게 백담사주차장을 찾아왔는데 아, 글쎄 이번엔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직원이 입산 시간이 지나서 통제하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며 돌려보냈어요. 어렵게 찾아온 등산로 입구를 등 뒤로하고 아내의 손을 붙잡고 걸어 걸어 백담사 종무소에 갔어요. 종무소 보살님이 우리 부부의 몰골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며 사찰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는지 스님께 여쭈어보겠다 하셨어요. 저희들에게는 엄청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스님께서는 단호했습니다. 환자분이 있어서 어떤 일이 발생 될지 모르니 사찰에서 지내게 해드릴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리하여 종무소 보살님이 애써주신 덕분에 용대리에 있는 민박집에서 편안하게 하룻밤 지내게 되었고 다음날 그 집에서 배낭도 빌려주었고 지팡이도 구입하도록 도와주셨어요, 사실 저희들은 배낭이나 지팡이는 전혀 준비가 안됐습니다. 봉정암 다녀온 사람들도 배낭이나 지팡이가 필요하다는 말은 없었으니까요, 어찌 됐든 19일인 오늘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여 7시에 백담사를 출발해서 부지런히 걸어 오세암에 도착한 것이 12시30분이었고 법당에 참배하고 12시55분에 봉정암으로 바로 출발했어요.”
처사님 말씀이 끝나자 나도 우리가 오게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들 일행은 어제 백담사를 출발해서 하룻밤을 오세암에서 지내고 오늘 새벽에 봉정암으로 올라왔습니다. 두 분도 오세암에서 주무시고 내일 오셨으면 그나마 덜 힘드셨을 텐데 너무 무리한 선택을 하셨네요.” 젊고 건강한 우리들도 어렵고 힘들어 2박3일 일정으로 다녀가는 코스라고 말씀드렸다. 
이내 처사님의 말씀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출발하면서 물어보니 오세암에 있던 한사람이 봉정암까지 3.9㎞ 밖에 안 된다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였어요. 저는 아내의 평생소원을 드디어 들어 줄 수 있겠구나하며 발길을 재촉하였죠. 그런데 산길을 약 한 시간 정도 올랐을 때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저희들을 보고는 다들 한 마디씩하고 지나갔습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환자를 모시고 어떻게 봉정암에 가려하느냐, 제정신이 있는 것이냐, 심지어는 욕설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불자이고 봉정암 사리탑을 친견하겠다는 일념으로 걷고 또 걸었지요, 날은 어두워지고 휴대폰 통화도 안 되고 가도 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돌아가기는 더욱더 막막하고, 죽을 힘을 내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극락 가는 것보다 힘들었어요. 입으로는 왼발 오른발을 외치고 마음속으로는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오다보니 계곡 위에서 사람소리가 들렸어요. 정말로 이제는 살았구나, 하며 속으로 부처님께서 보내 주셨나보다 생각하였죠, 지금에 와서 얘기하는데 장수에서 출발하여 여러번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백담사에서 내려가라 했을 때, 그때 알아차리고 돌아갔어야 했었는데, 저의 욕심과 집착이 지금 이 사단을 만들었네요, 그래도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호에 계속)

/글·강원범 <제주불교청년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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