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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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9)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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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에는 북쪽에 작은 출입문이 나 있다. 이 출입문 서쪽 벽은 중앙의 기둥을 경계로 두 화면으로 나뉘는데, 문과 접한 벽이 벽화가 그려진 14면의 벽 중 여덟 번째 벽이다. 벽화는 세 줄로 각 줄에는 다섯 장면씩 총 15장면(석씨원류의 105 ~ 119번째 장면)이 그려졌다. 진행 순서는 다른 벽과 마찬가지로 아랫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맨 윗열 왼쪽에서 끝난다. 각 장면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5단    119 담락불생(談樂佛生)      118 설고불래(說苦佛來)       117 노걸우불(老乞遇佛)
4단    116 대전판식(貸錢辦食)      115 촉아반불(囑兒飯佛)       114 권친청불(勸親請佛) 
3단    113 노비득도(老婢得度)      112 맹아견불(盲兒見佛)       111 인부득도(因婦得度) 
2단    110 견불생신(見佛生信)      109 화중취자(火中取子)       108 백구폐불(白狗吠佛) 
1단    107 악우몽도(惡牛蒙度)      106 앵무청불(앵鵡請佛)       105 부인만원(夫人滿願)  
  
이들 각 장면의 주제는 극락왕생 수행법, 교화, 보시 및 설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장면 <부인만원>은 부처님께 극락왕생 수행법을 묻는 내용이고, 다음의 <앵무청불>, <백구폐불>, <촉아반불>, <대전판식>, <맹아견불>은 보시를 강조하는 장면이고, <화중취자>, <악우몽도>, <견불생신>, <인부득도>, <노비득도>, <권친청불>, <노걸우불>는 외도를 믿거나 불법을 부정하는 이들을 교화하는 장면이다. 마지막의 두 장면 <설고불래>와 <담락불생>은 고통과 기쁨을 주제로 설법하는 내용이다. 불전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장면은 외도나 불교를 비방하고 세존을 위해하려는 자들을 제도하여 불법을 믿게끔 하는 것과 세존과 제자들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베푸는 보시라 할 수 있다. 석씨원류에 수록된 전도 과정의 많은 장면이 이들 주제를 다룬 것이다.  

불행한 여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한 부처님

성지 순례지로 빠지지 않는 곳이 인도 동북부 라즈기르에 있는 영축산(기사굴산)이다. 영축산에 있는 독수리봉은 법화경 등 다양한 대승의 법을 설법한 곳으로 알려졌다. 영산전이나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 영산회상도는 이 영축산에서의 설법 장면을 그린 것이다. 법화경 서품에는 영축산 설법에 1만 2천인의 대중이 모였는데, 그중 언급된 이름 말미에 ‘위데희(韋提希)의 아들인 아사세(阿闍世)왕도 백천 권속들과 함께 하였다.’고 기술되었다. 위데희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頻婆娑羅)왕의 왕비이고, 아사세는 그 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법화경을 설법할 당시에는 빔비사라왕은 죽고 아사세왕이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고 불교에 귀의한 때로 추정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법을 전파할 당시 여러 차례 부처님을 해치려는 악행을 범한 이가 데바닷다(제바달다)이다. 원래는 아난의 형이자 부처님의 속가 종제로 총명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자신이 부처님 다음에 교단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의치 않자 사사건건 전법을 방해하는 악의 축이 된다. 데바닷다는 왕사성에서 착한 태자였던 아사세에게 부왕인 빔비사라왕이 사실은 아사세를 죽이려 했으며 전생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다고 알려 왕위를 찬탈하게 만든다. 그렇다. 과거 후계자를 얻지 못한 빔비사라왕은 점술가로부터 3년 후에 왕자가 태어날 것인데, 왕사성에서 멀지 않은 산에서 수행하는 선인의 수명이 다한 다음 대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왕자를 간절히 원하는 왕은 3년을 기다린다는 것을 가혹하게 느꼈고, 태어날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영민한 왕이었지만 왕자를 얻을 욕심에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한다. 신하에게 은밀히 자객을 보내 선인을 죽이라고 명한다. 그리고 선인이 죽은 날 위데희 왕비에게 태기가 있고 열 달이 지나 왕자가 태어났다. 점술가들은 태어난 왕자가 왕을 죽일 운명이라 하자 깜짝 놀란 빔비사라왕은 왕자를 여러 번 죽이려 했지만 그때마다 왕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빔비사라왕도 왕자를 죽이는 대신 잘 키워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업은 이유 없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어서 훌륭하게 성장한 아사세 태자에게 데바닷다가 접근하고, 아사세에게 과거의 일을 들려주어 아사세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원한을 일깨운다. 결국 아사세는 빔비사라왕을 일곱 겹으로 된 감옥에 가두어 굶겨 죽이려고 한다. 왕을 면회 갔던 위데희 왕비가 이 사실을 알고 몸에 꿀을 바르고, 장신구에 마실 것을 숨겨 면회를 가며 빔비사라왕의 목숨을 연명케 했는데, 그만 발각되어 왕비도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감옥에 갇혀 피골이 상접한 남편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데 자신마저 감옥에 갇히자 왕비의 마음은 그지없이 산란하였다. 이때 위데희 왕비는 초췌해진 모습을 가다듬고 영축산을 향해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목련존자와 아난존자를 보내시어 위로받게 해 주시길 청한다. 
위데희 왕비의 간절한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부처님께서 직접 목건련, 아난, 제석천, 범천, 사천왕과 함께 오신 것에 너무 감동하여 위데희 왕비는 눈물을 흘린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위데희 왕비는 부처님께 사람을 죽여 자식을 얻은 악업을 뉘우치고 다음 생에는 근심과 고뇌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며 그런 곳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청한다. 부처님께서 백호광명을 내시어 수없이 많은 정토를 보여주자, 위데희 왕비는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세계에서 태어나길 원하고 왕생하기 위한 수행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땅히 세 가지 복업을 닦아야 하는데, 첫째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고,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고 십선업을 닦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삼보에 귀의하여 계율을 지키며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며, 세 번째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며 수행 정진하는 것이라 하셨다. 이 세 가지 복업을 닦으며 염원을 한 곳에 매어두고 서방정토를 비추어 보는 관상수행이 이룩되었을 때 극락에 왕생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빔비사라왕, 위데희 왕비와 아사세 태자의 이야기는  『관무량수경』 에 자세하게 언급되었다. 아들이 아비를 유폐시키는 예는 서아시아나 인도에 적지 않지만, 빔비사라왕의 이야기가 불교 미술의 인기 있는 주제가 된 것은 그가 죽림정사를 짓고, 부처님과 교단을 위해 많은 보시를 한 불교교단 최대후원자였다는 데 있다. 엄청난 보시를 했음에도 그 자신이 행한 과보로 아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 뉘우친 아들이 보낸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놀라서 숨을 거두었다는 비참한 최후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위데희 부인의 간절한 기도에 부처님이 응답한 것도 한몫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 1은 석씨원류  〈부인만원〉  판화이고, 사진 2는 각원사 대웅전에 그려진 벽화이다. 이 장면이 통도사 영산전 내부 상벽에는 간략하게 그려졌다(사진 3). 사진 4는 고려 불화로 앞에서 언급한 빔비사라왕과 위데희 왕비, 아사세 태자가 벌이는 왕사성의 비극이 묘사된 관무량수경 서분의 내용을 그린 일본 서복사(西福寺) 소장의  〈관경서분변상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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