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표해록』 해부 - 1771년 표류하다 겪은 5개월 동안의 생생한 일기로 당대 표류문학의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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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표해록』 해부 - 1771년 표류하다 겪은 5개월 동안의 생생한 일기로 당대 표류문학의 길라잡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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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중 고래를 만난다. ……
일행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무사 안녕을 비는 소리를 내었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장한철 표해록 1770년 12월 25일 일기에 보면, 항해 중 고래를 만난다. 장한철 일행 29명은 얼굴빛이 노랗게 되어, 배 안에 엎드린 채 고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일행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부처에게 무사 안녕을 비는 소리를 내었다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위험에 닥쳤을 때 누군가를 부르며 의지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동 표해록 1771년 1월 5일 자에는 한라산이 보이자 일행은 설문대할망에게 살려 달라고 빈다(선마선파, 선문대, 마고 등으로 나타나는 예도 있다). 
장한철이 1770년 향시에 합격하자, 1771년에 시행하는 전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과 관에서 여비를 지원해 주었다. 이에 장한철은 일행 29명이 한양으로 가기 위하여 조천포구를 출항하였는데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고, 호산도와 청산도에 표착하는 등 5개월 동안 겪은 생생한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표해록』 은 당대의 표류 문학의 길라잡이로 최부의 표해록과 더불어 조선과 외국(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표류해양설화문화민족성을 이해하는 디딤돌로 해양문학의 백미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 책에는 노인성 이야기, 불로초 이야기, 설화 이야기,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아주 고귀한 자료로 풍부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표해록』 을 필사(원본을 보며 다시 글을 씀)할 당시 장한철은 과거시험에 몇 번 낙방한 평범한 섬 출신이지만 공부밖에 몰랐다 한다. 열심히 노력하여 향시(초시인데 33명을 선발, 복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는 제1차 시험이다. 전해의 가을에 각 지방에서 실시하였다)에 수석 합격하자 영조(1775년) 51년 특별배려로 5월 25일 친림근정전경과정시문과(親臨勤政殿慶科庭試文科)의 별시(병과 27위)에 급제(과거에 급제하면 성균관에서 공부와 실습일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하여 성균관학유, 강원도 찰방 흡곡현령 직책을 맡아 일을 하다가, 43세(1786년) 제주도 대정현감으로 공직을 수행했다.
김지홍 표해록에 의하면, 승정원일기 2월 2일 조에는 임금이 한학 검찰관 이담에게 시권(답안지)을 채점하게 했는데 채점을 다 끝낸 이담은 “비록 서울과 동떨어진 제주의 선비들의 글이오나 아주 우수하옵니다.”라는 아룀을 받은 정조는 강봉서, 장한철, 김경희를 중간시험인 회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하게 전교를 내려 친히 참관할 만큼 장한철을 정조는 지극히 관심을 가졌는데, 정조 50년(1774) 5월 21일 조에는 강봉서, 장한철, 김경희가 바다 날씨가 나빠 2월 전시에 불참하게 되므로 이를 다음 전시(임금이 친림(親臨)하여 보던 시험으로 과거의 최종 시험이다)로 기간을 늦춰주는 아량을 엿볼 수 있다.

장한철의  『표해록』은 도지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으나 지역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필자가 2010년 해양문학관 설립 정책 제언을 하면서 장한철 표해록 산책로 비가 애월주민자치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필자가 도안 내용을 정리하여 건립하고, 한담공원에 기적비를 세울 때 추진위원이며 장한철이 걸었던 길을 갯갓길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했으며, 장한철 표해록 백일장 2회 때부터 애월주민자치위원회와 공동으로 추진, 장한철 생가 복원 사업에 관여 운영위원을 거치며, 표해록 해양관광벨트 조성 문화콘텐츠 개발을 도의회의 협조로 이어도연구회와 공동 제안했으며, 문화융성 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가져 장한철 표해록 길을 거의 탐방하고 장한철 관련 인물 상담채록 등을 통해 읽기 쉽게 쓴 장한철 표해록을 집필하여 도내 전학교에 무료 보급 이를 기본 삼아 장한철 표해록 백일장을 이어오고 있다.
장한철 표해록 필사본을 근거로 지금까지 만든 책으로 1979년 정병욱 번역(어떤 언어에 의한 저작물을 다른 언어로 된 상응하는 저작물로 대치하는 일)으로 범우사에서 한글판  『표해록』이 출간됐다. 1990년 송창빈 역자(글을 번역한 사람)로  『표해록』이 일어로 출간됐다. 2008년 한창훈 글로 제주선비구사일생표류기가 출간됐다. 2009년 김지홍 뒤친(젖혀 놓거나 엎어 놓다)으로 지만지클래식에서  『표해록』이 출간됐다. 2014년 장영주의 읽기 쉽게 쓴  『장한철의 표해록』이 출간됐다. 읽기 쉽게 쓴 장한철의 표해록은 장한철(인동 장씨 입도 7세손)의  『표해록』 을 후손(인동 장씨 입도 14세손)이 재정리하여 새롭게 쓴 책이다.
장한철(1744- ?)은 제주 출생이다. 해남 장씨라 알려졌다. 안남 상선에 승선하여 “우리나라는 예의로 치자면 천하제일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서로 아끼고 존경하여 어질고 아름다운 풍속을 그들에게 보여야 하오.”라며 자존심을 내세웠다. 청산도 등 표착 지역의 생활상과 풍향, 항로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서 후대들이 해양 교역의 길을 열어 주었다. 특히 왜적들이 장한철의 옷을 벗기고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았지만, 그의 꿋꿋한 성품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묘소는 강원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추정을 한다. 
장한철 표해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풍파에도 좌절하지 않는 꿋꿋한 인내심이다. 배가 난파되어 숱한 곤경에 처했어도 과거시험에 낙방해도 한치의 흩트림 없이 헤쳐나가는 리더십과 뭇 사람들을 잘 다스리는 용병술, 인자한 타고난 성품은 동행 29명의 연대 의식을 고취할 만큼의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장한철이 걸었던 한담 해변 갯갓길
장한철이 걸었던 한담 해변 갯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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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작가 동화작가
 • 2006. 05. 26. 솔로몬 종합대학교 명예문학박사
 • 2012. 8. 22. 영남대학교 교육학박사(설문대할망 연구)
 • 대전교육연수원 강사 2년       • 제주대학교 등 겸직교수(강사) 12년
 • 한라도서관 운연위원 등 20년     • 대한민국독서대전 운영위원장 등 4번
 • 도서출판 영주 대표       •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소장
 • 표해록 등 종이책 150권 전자책 358권(종이책과 중복 있음) 출간 
 •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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