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신행수기 공모 대상 수상 작품 -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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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신행수기 공모 대상 수상 작품 - 나무아미타불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0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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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일어나면 모두 극락왕생하시길
발원하며 십념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염불은 내 일상이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우리 집에는 언제나 염불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염불소리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염불을 따라 하게 된다. 출근할 때도 염불소리가 전송을 해 주고, 퇴근하여 집에 와서 문을 열면, 염불소리가 반겨준다. 잠잘 때는 머리맡에 염불을 켜놓고 염불을 하다가 잠을 잔다. 
나는 75세 남자로서 직업은 법무사다. 제주시 삼양동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삼양동 원당봉 불탑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1녀 2남,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 갔더니 주지 스님이 “식사를 할 때 ‘관세음보살’을 열 번 모시고 식사를 하라.”는 말씀을 들은 후, 우리 가족은 40년을 계속하고 있다. 주지 스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가족은 우리뿐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2013년에 주지 스님을 따라 신도 20명이 10일간 인도 성지순례를 갔다. 나는 경전을 읽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역사 속의 인물이고 경전상의 부처님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지순례를 통하여 부처님이 탄생하고, 출가하고, 고행하고, 깨달으시고, 법을 펴시고, 열반하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을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하여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2007년 ‘돈황 성지순례’를 썼던 경험을 살려서, 한 달 동안 공부하고, 자료와 사진을 정리하여 70쪽짜리 “인도 성지순례” 100권을 만들어 여행 갔던 일행과 신도들에게 나누어 드렸더니 모두 좋아하여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가을, 불교문화대학 10기 동창생들과 전북 임실군 성수산에 있는 상이암에 도착했다. 주지 스님은 우리가 제주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 절에서 매월 4번째 토요일, ‘나무아미타불’ 철야정진을 하니 동참 하십시오.”
다음 달, 아내와 같이 상이암 철야정진에 참석하였다. 저녁 6시 법당 앞에 참석자 50여 명이 모였다. 스님이 걸으면서 염불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걸을 때, 오른발을 먼저 내밀면서 ‘나무’, 왼발을 내밀면서 ‘아미’, 다시 오른발을 내밀면서 ‘타’, 왼발을 내밀면서 ‘불’하면 됩니다. 염불 외에는 묵언입니다.”
스님 말씀대로 걸으면서 목탁소리에 발맞추어
“나무, 아미, 타, 불, 나무, 아미, 타, 불, 나무, 아미, 타, 불…….”
모두 큰소리로 염불을 하면서 한 시간을 걸어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발자국에 맞추어 염불을 하며 걸으면서 신심이 일어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법당 앞에 돌아오니 스님이 철야정진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처음 20분은 앉아서 합장하여 목탁에 맞추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다음 20분은 절을 하면서 염불하고, 다음 20분은 법당 안에서 줄지어 걸면서 염불합니다.”
새벽 5시 철야정진을 마친 후, 걸음을 걷자 자동적으로 염불이 나왔다. 발만 움직이면 오른발, 왼발, 나도 모르게 ‘나무, 아미, 타, 불’ 염불을 하게 되었다.
떠나올 때 스님이 ‘정토삼부경’과 ‘염불감응록’을 주시면서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운전할 때나, 잠잘 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열심히 하십시오. 염불을 계속하면 잡념이 없어져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임종 시에 서방정토에 극락왕생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부지런히 염불 하십시오.” 
우리 부부는 스님 말씀대로 열심히 염불을 하고 있다.
‘정토삼부경’에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삼경이 있는데, ‘무량수경’에 “참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길이 쉽건마는 가는 사람이 없구나!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심 없이 믿기만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연히 이끌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될 터인데,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더욱 정진하여 고해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가?”
나는 정토삼부경을 읽은 후 더욱 열심히 경전 공부를 하였다.
<불설아미타불근본비밀신주경>에   “사리불아 ‘아미타불’을 부르고, 깊은 신심으로 게으르지 아니하면, 현재의 몸으로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을 누리고, 빈천한 처지가 부귀한 것으로 바뀌며, 숙세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면하고, 단명할 목숨이 장수하고, 자손이 번영하고, 심신이 안락하며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느니라.”
어머니는 2009년 102살에 돌아가셔서, 불탑사에서 49재를 하였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재를 지낼 때 참석했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머니 49재를 다시 해 드리기로 했다. 아침에 한 시간씩 염불을 하고, 대학노트에 하루 2쪽 씩 나무아미타불 사경을 시작했다. 49일 동안 염불하고 사경을 했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어, 2번째 49재를 다시 지냈다. 꿈에 어머니가 커다란 하얀 연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보았다. 너무 생생하였다.
그 다음, 혼자 살다가 75세에 돌아가신 이종사촌을 위하여 49재를 2번 지냈다. 생각하면 늘 화난 얼굴이 떠올랐었는데 염불한 후, 환하게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2016년 봄, 경주에 있는 기림사에 갔다. 쌍계사에서 인연 맺은 스님이 기림사로 옮겨 가셨다는 말을 듣고 간 것이다. 기림사 대적광전에 ‘비로자나불’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여래불’ 삼존불이 모셔져 있었다. 아미타부처님께 절을 하고 올려다보니 부처님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아미타부처님 앞에서 염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3일 동안 열심히 염불을 하였더니 10만 번 염불을 할 수 있었다.
2016년 가을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스리랑카는 완전히 불교 국가였다. 
2018년 스님에게 그동안 사경한 대학노트가 240쪽짜리 7권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문의를 하였더니, 백중불공 때 가져오라고 하여 가져갔더니 상단에 올렸다가 불공이 끝 난 후, 지전을 불사를 때 같이 불태워 주었다.  
2019년 그 동안 염불 공부를 하면서 정리한 자료를 모아, 제목은 ‘나무아미타불’, 150쪽이 되는 책 1,000권을 만들어 부처님오신날 신도들과 참배객에게 나누어 드렸더니 모두 좋아하여 보람을 느꼈다. 부디 모든 분이 염불을 하시길 기원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모님을 집에 모셔와 같이 살았다. 10년을 모셨더니 2019년에 몸이 쇠약해져 밖에 나가지 못하였다. 집에 계신 장모님에게 염불을 하게 하였더니 자꾸 잊어버리고 염불이 끊겼다. 내가 쓰던 핸드폰에 10시간 염불을 다운받아 들려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노래하듯이 염불을 따라했다. 장모님은 2020년 11월 5일 새벽 3시. 96세에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날도 머리맡에 염불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장모님의 얼굴은 잔잔한 미소로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 같았다. 염할 때 보니 팔도 부드럽고, 얼굴과 손의 피부가 매끈하고 반들반들하여 신기했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93세 큰누나, 90세 둘째 누나, 87세 셋째 누나에게 염불을 권하였더니 모두 열심히 염불을 하고 있다. 
우리 집 가족규칙 제1호는 “우리 가족 종교는 불교”다. 며느리도 사위도 손자도 불교 신자여야 한다. 결혼을 하려면 불자와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조상님, 일가친척과 모든 영가, 모든 중생이 모두 극락왕생하시길 기원하고 발원하며 십념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염불은 내 일상이 되었다. 
나는 평소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컸었다. 그런데 염불을 시작한 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법당에서 절을 하면서 계속 소원을 빌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감사 기도만 한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김상식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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