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표해록』 해부 - “조천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무사 안녕 항해 기원”
상태바
장한철 『표해록』 해부 - “조천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무사 안녕 항해 기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22 0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70년 12월 24일 조천관에 머물렀다가 25일 아침 출항하여 1771년 5월 8일 귀향하여 죽은 이들을 해원 할 때까지 일기를 장영주, 읽기 쉽게 쓴 장한철 표해록, 글사랑, 2014.에서 주요 항목을 뽑아 네모 안에 제시하고 이를 해부하고자 한다. 
그 첫째 일기이다.

1770년 12월 25일 바람 일기

주) 장한철 일행은 1770년 12월 24일 조천관에서 하룻밤 묶으며 무사 안녕 항해를 기원했다 한다. 현재 조천관 앞에 조천관이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고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사유지로 장한철 일행이 29명 묵기로는 좁은 공간임을 볼 수 있다.

조천관은 조선 시대에 관리 상인 유배인 등이 육지를 드나들 때 머물었던 곳이다. 조천관은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지금으로 말하면 숙소 여관이라 할 수 있다.
TV 극 중 드라마를 보면 주막에 관료, 장사치, 흉악범, 암행어사까지도 한대 엉켜져 하룻밤을 지내는데, 암행어사가 마패를 도난당해 어찌할 줄 모르는 영상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조천관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졌으리란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조천관 주변은 예전엔 기와집이 수채 있던 아주 부유한 곳이다.
도축장이 근방에 있고 연북정도 가까이 있어서 귀양 오는 높은 양반이라든지 서울 드나들던 부자 행상인이 묶었던 곳으로 지금도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장한철 일행 29명이 이 좁은 방에서 하룻밤 지내며 새우잠을 잤든지 아니면 아예 전세독체예약을 했으리란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연북정은 탐라(제주)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에서 들려오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에서 연북정으로 이름을 고쳤다 한다.
언제나 임금이 나를 불러 줄까? 사색당파에서 내가 속한 파가 권력을 잡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기다림에 기다림을 더하던 곳이다.
연북정은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호(1971년 8월)로 지정되었다. 현재 연북정은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연북정 그림과 구조에 차이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연북정 터에 조천석(재앙을 막아 달라는 소원을 담은 돌)이 있었다 한다. 
정자를 지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지관이 만세동산에 올라가 연북정을 가리키며 “이상하다. 저 정자 자리에 바위가 하나 있을 텐데.” 라며 조천석에 대한 말을 했다한다.

주) 칠성의 마지막별이 떨어져 조천석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진나라  ‘서복’ 이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처음 탐라에 도착한 곳이 조천포구로 서복이 떠날 때 해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큰 바위 위에 조천석이라고 새겨 놓았다고 전해온다.

 

장한철 표해록을 설명할 때는 대부분 정병욱 표해록을 말한다.
여기서 약간의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병욱 교수는 장응선 교장이 간직하고 있던 사료 즉 필사본을 건네받아 서울에 올라가 해설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정병욱 교수는 장한철 표해록을 보고 해양문학의 백미라 하며 단숨에 해설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확실한 명단 파악에 느슨하지 않았나를 생각해 본다.
그 후 김지홍 교수는 국립제주박물관에 직접 가서 장한철 표해록을 사진 찍어 오게 된다.
따라서 필자의 책자에는 정병욱 교수의 승선 명단(5명의 명단이 다름)보다 김지홍 교수의 명단이 맞는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표해록에 의하면, 바람이 멈추니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파도 따라 머뭇거렸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몇몇 섬이 붓끝처럼 보이기도 하고, 관탈섬은 작은 관탈섬과 큰 관탈섬으로 나뉘는데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 떨어진 섬으로 ‘곽게’라고도 부른다.
옛날 유배인들이 직급에 따라 이곳에서 관복을 벗고 평민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치렀던 섬이라 전해온다.
 

뱃사람들은 예전부터 고래를 바다에서 위험 요소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표해록에 의하면 고래를 보며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숨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있어야 고래는 우리가 배에 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오. 무슨 까닭으로 관세음보살 소리를 외쳐대어 고래의 화를 돋우는 것이오? 저 고래가 도를 닦는 스님이 아니니 어찌 관세음보살이 귀하다는 걸 알겠소? 만약 관세음보살의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저 고래가 이 배를 보호해 줄 수 있겠소? 고래를 옭아매는 일이 아니라면 그대들이 관세음보살한테 도대체 뭘 바란다는 거요?”
장한철과 승선의 말에서 고래가 나타난다는 건 비바람이 불 징조라 했다.

주) 최근 고래 여행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모슬포에 세 군데 그 이웃 쪽이 한 군데에서 영업 중이라는 데, 그러다 보니 자연 생태계가 혼란스러워진다 한다. 고래라는 것이 둥치보다 상당히 예민하여 촉각을 세우고 이동한다는 데 작은 낚시 배 등 여러 배가 고래가 지나는 길목을 막아서서 관광 상품화되면 상당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 좋은 것이 아닐까요?

/장영주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