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낭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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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낭패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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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재료로 음식 만들어 놓으면
어디 먹기나 할까 굴러다니다 버리게 되니
애쓰거나 든 비용을 생각하면
기실 이만저만 아까운 것이 아니다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 한국문인 2019 시 등단, 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 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시집 〈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 한국문인 2019 시 등단, 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 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시집 〈묵은 잠, 뒤적이며〉

낭패(狼狽)는 전설 속에 나오는 동물 이름이라 한다. 이리 낭(狼)자에 이리 패(狽)자를 써서 낭패라 하는데 모두 이리를 뜻하는 말이다. 낭은 앞발이 길고 뒷발은 짧은데 패란 짐승은 앞발은 짧지만 뒷발이 길다. 낭은 패 없이는 서지 못하고, 패는 낭 없이는 가지 못한다. 패 또한 낭을 잃으면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꾀가 부족한 대신 용맹한 낭과, 꾀가 있는 대신 겁쟁이인 패가 호흡이 맞을 때는 괜찮다가도 서로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만저만 문제가 큰 것이 아니다. 이같이 낭과 패가 서로 떨어져서는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경우에 우린 흔히 낭패라 말한다. 
대충 씻고 나와 서둘렀다. 외며느리로 사는 친구네 집안의 시어른 기일이라 제 음식을 도와주러 가기로 한날이다. 도착하자 친구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씻고 꺼내며 준비하고 있었다. 마련된 재료로 적이며 전을 부쳐 팬에서 익은 것은 건져 내 커다란 대소쿠리에 더운 김 빼느라 널어놓았다. 불을 조절해 가며 지지고, 굽고, 찔 것은 쪄내느라 분주하다. 
자칭 살림꾼이라는 여인 셋이 앉으니 재료만 눈으로 대충 훑어도 무슨 음식인지, 어떻게 만들지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무엇보다 이 집이나 저 집, 진설하는 제수종류나 만드는 음식도 얼추 비슷해서 더 그렇기도 하다.  
우리 세 여인은 시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 세대엔 아궁이에 불때가면서 송편도 빚고 시루떡도 다 쪄냈었다고 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힘들게 살았다며 입을 모은다. 어디 그뿐일까. 어머닌 집안 어른 기일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땔감이며 항아리에 물 채워 놓는 것도 큰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전을 곱게 부쳐내어 늘 전을 담당하는 한 친구가 말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엔 떡 하나 얻어먹을 욕심에, 제사 퇴물 갖고 온 친구 책가방을 학교까지 들어다 줬다고 말한다. 그 위로 부지런히 놀리는 팬 위, 그 손끝에서 추억 한 조각도 같이 익어갔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이젠 먹을 것을 많이 만들어 놔도 잘 먹지도 않고 굴리다 결국은 버리게 된다고 말하자 비슷한 상황들인지 그렇다고 응수한다. 
요즘은 제사를 당일에 모시고 더러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도 한 날에 합제하는 집안이 늘어나 간소화 되는 분위기다. 지금도 이러는데 아이들 세대엔 어떻게 제사문화가 바뀔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줄 알지만 적이 걱정된다고 하자 서로 두리번거리는 품새가 말만 아끼고 있을 뿐 얼추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지난 추석 때만 해도 그랬다. 날씨가 덥다 보니 냉장고에 넣는다 해도 다 담지 못한 음식은 밖에서 곧 상했다. 연휴 끝나자 서로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바람에 음식의 절반도 못 먹고 이 그릇, 저 그릇으로 옮겨 놓기를 반복했다. 결국 아깝다는 생각만 하다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먹지 않아 음식 버리고 죄짓는 마음의 무게는 고스란히 내 몫이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면 싸서 가져가라 해도 아예 손사래다. 먹는다 해도 사실 식구도 많지 않으니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내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 그렇다.
아까우니 먹으라고 내놓는 음식을 보며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다가 아들은 대단한 것을 발견한 양 말한다. 명절음식을 피자나 통닭 튀김, 나중에 엄마 좋아하는 생선회, 초밥 이런 것으로 올리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말해 놓고 미안함인지 어색하게 웃다 방으로 들어갔다. 하기야 같은 날 다 똑같은 재료를 갖고 준비하느라 쪽파며 엄지와 검지 사이에 들어갈 만한 양의 미나리 한 단 가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평상시 가격의 열 배는 더 줘야 산다. 비싼 재료로 음식 만들어 놓으면 어디 먹기나 할까. 굴러다니다 버리게 되니 애쓰거나, 든 비용을 생각하면 기실 이만저만 아까운 것이 아니다.
생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고 파제 후 식구들이 맛있게 음복하면 그게 좋은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엄마가 나중에 돌아가시면 생선회나 초밥, 좋아하는 허브맛 치킨을 올리겠노라고 한다. 커피도 같이 올리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심 싫지 않은 제안이다.
며칠 후 친구들과 만난 자리. 명절 후 남은 음식이 아까워 먹으라 하니 우리 아이가 이러저러 하더라고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가 그건 양호한 것이라는 말로 못 박은 뒤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은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상에 신용카드 올릴 테니 드시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거든 마음대로 사 쓰고 가시라.” 고 말하더란다.
웃겨서 웃었고, 어이없어 웃었고, 기발해서 웃었다. 이 제안도 별 거부감은 없어 좋다만 이런 이야기를 공자님께서 듣는다면 뭐라 하실지 궁금하다. 부모님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과 보은의 가르침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다가 낭패라 하실까 궁금했다. 어쩌면 시류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도 삶의 지혜라며 한 발 양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간소화 되고, 거리두기로 인하여 가까운 친척 일에 참석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했던 분위기도 많이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바삐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 따라, 상차림 등 많은 부분이 간소화 된 것도 확연하고, 먹을 게 넘치는 때이기도 하지만 손도 많이 헐거워진 것도 맞다. 
낭과 패의 섞임이 혹여 조상 없는 자손과 자손 없는 조상에 대응하며 상관관계의 의미로 대비해 보겠다면, 이 또한 불효막심이고 배은망덕이라며 맞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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