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상견想見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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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 - 상견想見 중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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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머무는 자가 되기 위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빌려야

“비구들이여, 여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툰다. 비구들이여, 법을 말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이는   『상윳따 니까야』  「꽃 경」  (S22:94)에 나오는 말씀으로 여래께서 그 자신을 다툼이 없이 머무는 자[無諍住]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이 경에서 말하는 세상이란 저희들이 사는 중생 세상입니다. 여래가 ‘오온五蘊은 무상하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상하지 않다.’고 말하고, 여래가 ‘오온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요, 무아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즐거움이다, 자아가 있다.’고 말하면서 다툰다는 뜻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Hobbes, Thomas)는 종교 전쟁 뒤의 혼란을 목격하고, 모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와 유사한 투쟁이 국내외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회관계에서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사회 구성원 각자의 성장환경이나 가정 및 학교교육, 경험 등에 터 잡은 견해 또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안민安民을 제쳐두고 권력 투쟁의 진흙탕으로 변질된 여의도 정치판이나 강성 노조의 ‘떼법’을 보노라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가들, 권력자들, 가진 자들은 ‘나야! 나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거드름 부리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바꾸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아상我相은 ‘경험자아’에 불과합니다. 시종을 알 수 없는 윤회 속에서 사람 및 사물과의 관계를 맺어온 습관, 성향,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아에 대한 환상이 강한 사람일수록 병적으로 명성을 갈망하는데, 이런 사람일수록 명성이라는 견해의 덫에 걸려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으로 축적한 자기 확신이 강해집니다. 이런 심리현상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하는데, 참으로 고치기 어렵습니다. 유행 따라 옷도 바꿔 입고, 전자 제품도 바꾸지만 저 역시 수십 년간 축적된 고정관념이나 말투는 쉽사리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견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평화롭게 머무는 자가 되기 위하여 저는 부처님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고대 인도의 현자들이 지식(앎)의 관점에서 제기한 모든 존재론적인 명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실망스럽고 심지어 당황스럽게도 어떤 것을 선택하여 어떤 견해를 밝히는 것을 부단히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에피소드의 하나가  『맛지마 니까야(중아함)』 의  「말룽꺄 짧은 경(독화살 비유 경)」 (M63)에 실려 있습니다. 이 경에 등장하는 말룽꺄뿟따(Mālunkya-putta) 존자는 세존께서 열 가지의 문제(十事)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해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환속하려고 했던 분입니다. 
이 존자는 세존께 “①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②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③영혼(jiva)은 몸과 같은가? 다른가? ④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⑤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라고 10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세존께서 ‘독화살의 비유’를 들면서 이렇게 공언하셨습니다. “이런 사변적인 견해가 있거나 상관없이 생로병사와 우비고뇌가 있고, 나는 지금 여기서 그것들을 부수기 위한 처방을 내린다. 견해가 있다면 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여래가 그것을 공언하지 않고 제쳐두고 있는 이유는 그것은 무익하고, 성스러운 삶의 근본에 속하지 않고, 그것이 미혹에서 깨어남으로,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소멸로, 평화로, 직접적인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를 알고 봄으로써 사변적 견해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바른 견해[正見]을 제공하여 해탈·열반의 길을 안내합니다.
재가자들은 자기의 생각[想]과 견해[見]의 뿌리에 탐욕, 성냄, 사견, 자만 등의 근본적인 오염원들이 잠재돼 있음을 모르고, 또 살아 있는 내내 그 뿌리에서 싹을 틔우고 업의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오염원들에 내재 된 결점과 위험을 알지 못합니다. 
환갑이 지날 무렵 이 몸뚱이에 켜켜이 새겨진 자아관념, 세속적 가치 등과 모순, 갈등을 일으키는 담마(dhamma)와 마주하면서 자신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기도 했지만 거꾸로 업보의 위험을 알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붓다의 호흡법을 익혀서 고요함을 체험하고, 또 위빠사나 지혜 수행을 통해 오온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자 영원한 올챙이 신세를 면하게 됐습니다. 
 「금강경」 은 버리고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인식으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들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들은 단지 인식에만 머물지 않고 존재론적인 고정관념으로 고착된다고 이해한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은  「금강경」 에서 이러한 인식을 ‘상想’으로 옮기지 않고 ‘상相’으로 옮겼다고 말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인식 경」 (A7:46)에는 극복되어야 할 고정관념으로서의 인식만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증득하고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발하고 닦아야 하는 일곱 가지의 인식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7세기 해동불교의 선지식 원효 대사는 인식의 오염, 인식의 전도는 ‘개념 환각[相]’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병임을 직관하고, 그 치유법이 ‘상相 깨뜨리기’이며 이것이 금강삼매경의 6품을 설정하여 관행 수행법을 펼치는 이유라고 사자후를 토하셨습니다.
비록 재가 수행자라 하더라도, 오온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고상한 인식(통찰지혜)을 계발한다면 ‘자아니 참나(眞我)니 영혼이니 일심이니’ 하는 존재론적인 실체가 있다고 희론戱論 하는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여의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끝내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恒山 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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