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14) - “마음이 텅 비니 무엇에 매달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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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14) - “마음이 텅 비니 무엇에 매달리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0.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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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시인, 수필가
곽경립시인, 수필가

우리의 삶 속에는 온갖 것들이 서로 뒤엉켜 흘러갑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 부릅니다.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 절망과 희망, 부와 가난 등등,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하나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현상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삶은 아닙니다.  『중론中論』에 보면,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생겨난 것으로, 공空 하다고 말합니다(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세계의 모든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의지하고 작용하면서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물과 사물과의 연관 관계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생겨나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 현상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인연因緣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여 연기緣起라고 합니다. ‘인연으로 생겨난 것들은 스스로 생겨나 변화하지 않는 본래의 성질(자성自性)을 갖지 못함으로 공空 하며, 이 공空 역시 자성自性을 갖지 않아 공空 하다.’고 하는 나가르주나(용수龍樹 150-250년경)의 공空의 개념은 대승불교가 자랑할 만큼 매우 뛰어난 것입니다. 석존의 사상을 기반으로 등장한 공의 개념은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로 한역漢譯이 되어, “자아自我(본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라는 공空의 개념이 완성됩니다. 실체가 없다는 공사상은 어쩌면 허무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진실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있음(有)과 없음(無)에 머물지 않고 오로지 몸과 마음의 자유를 추구했던 한산자寒山子의 시 한 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덕전등록』 과『태평광기』 에 ‘한산자寒山子는 이름과 성씨는 알 수가 없고 천태天台의 취병산翠屛山에 숨어 살았는데, 산이 깊고 험하여 여름에도 눈이 남아있어 한산寒山 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 그의 생몰연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몇몇 기록을 통해 한산은 시를 좋아하고 깊은 산속에 은거하여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의 두 번째 연 ‘구름 속 덩굴로 덮인 동굴’은 한산의 실질적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한암寒巖을 말하며, 좁고 긴 동굴 입구는 산 중턱에 있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연과 넷째 연을 보면 중국 당唐의 승려(780~840) 화엄종의 5조祖 규봉圭峰대사, 종밀宗密의  『선문사자승습도禪門師資承襲圖』 에 실린 글이 떠오릅니다. “마음을 끊어낼 것도 없고 억지로 만들 것도 없이, 마음이 돌아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자. 이 사람을 불러 해탈 인이라고 한다.” (不斷不造, 任運自在, 名爲解脫人) 그렇습니다. 한산자寒山子는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세상 만물의 실체가 없음을 바라봅니다. 한산은 ‘마음이 텅 비어 있으니 바랄 것 없다’는 말로 모든 생각을 끊어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밝은 달과 같아서 어두운 천지를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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