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칼럼 - 국정감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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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칼럼 - 국정감사의 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0.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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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준 - 본지 논설위원前 제주도기자협회장
임창준 - 본지 논설위원前 제주도기자협회장

10여년 전의 일이라 생각된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 언론인 A씨는 각급 행정기관을 출입하면서 ‘정론직필’의 자세로 취재해 기사화했다. 잘못된 도정·의정 정책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해 시정을 요구했다. 이와 반대로 잘 돌아가는 도정은 크게 홍보해 그런 정책이 지속적으로 펴나가도록 펜을 들었다.
그러던 중 도가 제출한 예산안 심사를 할 때 한 도의회 의원이 자기가 속한 양식 수산업체에 기억대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받으려고 하는 움직임을 갖는 것에 주목했다. 역시나 그 의원은 도지사를 상대로 한 도정질의에서 예산지원을 강력히 요구했다. 도나 의회 주변에선 그가 암암리에 수산업을 영위하는 직에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이런 사실을 알고 특정한 단체를 위한 무리한 예산요구임을 알고 이를 기사화했다.
신문 기사가 나자마자 온라인으로 나오는 이 기사에 A씨를 비난하는 악성댓글들이 수십 개 달렸다. 기사가 어디는 잘못됐다는 이 기사에 대한 지적이나 해명은 없고 A씨를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수십 개의 악성댓글이 올라왔다. 나쁜 놈, XXX같은 녀석 등 온갖 욕설로 도배됐다.
참다못한 A씨는 이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프린트해 제주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의뢰했다. 혹시 해당 의원 쪽에서 댓글을 올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지만 증거를 밝힐 수 없어 수사기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셈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3달 지나도록 수사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모독을 당했다고 느낀 A씨는 언론인으로서의 회의감마저 갖게 되며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그 해 가을 제주도와 경찰청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펼쳐진다는 소식 때문이다. A씨는 국정감사 당일 오전 평소 깐깐하다고 소문난 B국회의원을 만나 자초지종 이야기하고 경찰의 미진한 수사부문에 문제를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오후 제주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B의원은 경찰청장에게 앞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제주지역 중견언론인이 경찰에 수사의뢰를 낸지 3개월 넘도록 수사 진척이 없다. 사이버 수사대는 대체 뭐하는 곳이냐”고 경찰청장을 다그쳤다. 경찰청장은 이런 질의가 나올 것으로 예상도 못했다가 쩔쩔맸다. “조속히 철저히 수사해 그 결과를 의원님께 보고하겠다”는 걸로 일단락됐다.
그 이후 경찰청(본청)에서 사이버 수사요원이 제주경찰에 파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1주일 후에 범인을 밝혀내고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범인은 바로 A씨가 예상한 도의원의 비서였다. 그는 벌금 500만원에 처해졌다.
국정감사가 얼마나 힘이 세고 영향력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이것은 국회가 입법(立法)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가지는 데서 인정된 것이다.
지난 4일 시작한 이번 국정감사는 11월3일까지 783곳의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초반부터 여야가 정쟁에 매몰돼 매몰되어 비생산적인 국감으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알고 보면 기구한 운명의 국정감사.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는‘국회의 꽃’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국정감사가 때로는 정치공방이나 폭로, 그리고 과욕이 빚어내는 해프닝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정쟁(政爭)이 아닌 정책감사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매년 부실국감이니 식물국감이니 논란 또한 반복되고, 국감이 끝나기 무섭게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나마 국정감사가 있어 행정부와 산하기관이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쓴 건 아닌지 등을 꼼꼼히 묻고 따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이 굴러가는 한 국정감사도 같이 굴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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