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열쇠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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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열쇠 찾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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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다듬는 감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하나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이애현(수필가_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이애현(수필가_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예닐곱 개의 크고 작은 궤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얼마 전 수납공간 좋고 방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며 거기에 배색까지 더한 붙박이장으로 집 안을 바꿨다. 손가락 하나의 힘으로도 여닫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게 고급스러움까지 더했다. 색감마저 우중충한 궤가 굳이 필요할까만 민구류를 좋아하는 취향이 안방과 거실의 면면을 할애한 것이다. 
각기 궤마다 물고기 모양, 거북 모양, ㄷ자형, 원통형 자물쇠를 어렵사리 구해다 채웠다. 특별히 뭔가를 넣고 잠가두어야 될 만큼 중요한 것은 기실 없다. 설령 빈 궤에 무쇠의 텁텁한 원통형 자물쇠를 달아만 놓아도 운치 있어 좋고, 청동이 주는 노란빛 거북 모양 자물쇠도, 흔하면서도 손때 탄 ㄷ자형 자물쇠도 좋다. 
별 것 아닌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지인이 여행길에서 샀다며 자물쇠 하나를 선물했다. 자물쇠에는 한 줄에 다섯 개의 고리가 있는데 고리마다 네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자물쇠는 글자 하나하나를 완전한 시구로 맞추어야만 열린다 했다. 글자들을 꿰어 맞춘 후 문장을 만들어야 열리게 되는 셈이다. 새겨져 맞추어진 뜻은 전혀 모르고 자물쇠를 열려면 필요한 다섯 글자만 알 뿐이다. 마치 문제는 이해 못하고 정답만 달달 외듯 하는 형상이랄까. 
욕심내어 술 고운 노리개를 하나 장만하여 달아 놨더니 한층 멋스럽다. 자물쇠 모양만큼이나 열쇠가 제각각이다 보니 매번 어느 게 어느 것과 짝인지 열 때마다 헷갈렸다. 색실을 땋아 꾸러미를 만들었다. 한결 편하다.
오후의 한가한 시간. 오랜만에 계절 잃은 듯 따뜻한 햇살을 등 언저리로 온통 받으며 화창한 오후를 맞고 있었다. 차 한 잔을 식탁 위에 놓고 느긋이 앉아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모니터 액정을 확인했다.
“뭘 하느라고 메일도 한번 안 열어보냐?”며 간만의 여유를 재촉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일어나 PC앞에 앉았다. 이러저러한 절차와 지시에 따라 가상공간에서 비밀열쇠를 하나를 다시 쥐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른 메일계정을 쓰게 되고, 수시로 그곳을 드나들다 보니 전에 썼던 메일계정 비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에 나오는 바위로 된 비밀 문을 열 때도 이랬을까. 그럴듯한 문자와 숫자를 조합해 가며 나름 생각나는 대로 문 앞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열려라 쌀, 열려라 보리, 밀, 조, 콩 하며 입력해 보았으나 도통 열리지가 않았다. 머리가 띵하니 쥐 날 것처럼 어지럽다. 비번을 새로 부여 받을까 하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 봤다. 되새기려 할수록 써 본 기억도 없는 듯 머릿속이 하얗다. 결국 절차에 따라 재부여 받고서야 겨우 열었다.
느긋함을 재촉할 만했다. 보낸 지 한참 지나 수신확인 해봤더니‘읽지 않음’으로 되어 있어 전화했다는 것이다. 메일 내용은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아들이 결혼한다며 날짜와 장소를 알려왔다. 그 언니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가 말끝에 오해가 생겨 버렸다. 내 말의 뜻은 분명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언니 또한 그 입장에서 해석하다 보니 이야기가 헝클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만 엉킨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엉키게 되었다. 한사코 아니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으나 이미 엉킨 감정은 그럴수록 상대에게 감정의 날을 세우는 빌미만 제공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갑갑한 마음에 해명하며 사과를 해 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갖고 오버한다고 속으로 일축해 버리면서 관계는 더욱 뜸해진 것이다.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정리 덜 된 마음은 쉬 내키지 않고, 안 가자니 그것은 더 더욱 아닌 듯했다. 감정은 뜸한 사이 시간이 약이라며 절로 누그러지며 아무는 듯 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재워 놓은 가슴 속 바닥은 동요다. 표면은 고요한 척하면서도 깊이로 휘도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딱히 뭐라 형언하기 힘든 것이 밑바닥에서 스멀거린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쉬이 열리지 않는 이 감정은 또 무엇일까. 재고 다듬는 감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하나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열려라 참깨’하고 주문을 외며 열려고만 하면 언제든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신비의 힘을 발휘할 그런 열쇠 하나쯤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다듬어 쓰는 과정이 담보 되더라도 구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 꾸러미에 같이 꿰어 지니고 싶다.
결혼식이 오는 휴일이라는데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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