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9) - 도덕경 -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시작한다”
상태바
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9) - 도덕경 -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시작한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09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인은 오히려
모든 일을 어렵게 대한다
그래서 마침내
어려움이 없게 된다

 

노자는 허정과 무위를 강조하였지 허정과 무위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어떠한 행위를 처음부터 긍정하게 되면 집착에 빠져들어 오히려 그 행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하되 행함을 의식하게 되면 행함에 얽매이게 된다. 행함에 얽매이게 되면 그 얽매인 일에 대해서는 할 수가 있지만 얽매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행하되 행함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행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고도 그곳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있다. 즉 행함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행하되 행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미 채색되어진 종이 위에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흰 종이에는 무한한 것들을 그릴 수 있다. 이처럼 무위, 무사, 무미의 무는 모든 존재 만물을 포용하고 존재하게 하는 터전이 된다. 이 무는 유의 원인이 아니라 유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 없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무와 유가 하나가 되어 존재론적으로 존립 가능하게 된다. 
무/유, 대/소, 다/소 등과 같은 대립면의 관계는 서로 반대편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 대립면끼리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작고 적으며 미세한 것에서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그 대립면의 반대편에 있는 크고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다. 도를 체득한 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대한다. 
사람들은 큼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큼 속에 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작은 계곡의 물이 모여 강이 되고, 작은 계곡의 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쉬운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비자 「유로」에서는 백규의 장인(丈人)의 예가 나온다. 천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 구멍 때문에 무너지고, 백 자나 되는 집도 굴뚝의 불똥 때문에 타버리기 때문에 쉽고 작은 일을 등한시 하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도를 체득한 성인은 작고 큰 것, 많고 적은 것, 그리고 원한과 덕이 서로 상대적 관계 속에서 서로 상대편을 향해 열려 있고 맞물려 있음을 통찰하기 때문에 작은 것 속에서 커지는 가능성을 보고, 적은 것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다. 따라서 작은 것은 큰 것의 기초가 되고, 적은 것은 많은 것의 기초가 된다. 주역의 「건괘」에서는 하루 종일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에도 두려워하면 위태하기는 하나 허물이 없다고 하고 있다. 이는 맹자 「고자 하의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하겠다. 
매사의 일에 있어서 가볍게 승낙하는 사람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 드물다. 쉽게 승낙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매사에 쉬운 일만 있으면 반드시 감당하기 어려운 큰 일이 생겨난다. 인생의 길에서 탄탄대로로만 걸어가게 되면 반드시 헤쳐 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성인은 비록 지금에 있어서는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할지라도 훗날에 닥칠 위험을 미리 염두에 두고서 매사의 일을 신충하게 처리한다. 성인은 미리 어렵다고 느끼고 있으므로 비록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미연에 방지하여 끝내 어려움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글·고은진 철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