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필 - 린이 부처님을 그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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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필 - 린이 부처님을 그리는 시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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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림을 보고 그려보고 싶더래요
아들을 재워놓고 무작정 그려보았는데
너무나 행복하더랍니다

늦은 밤 여러분이 귀를 기울인다면 아마도 들릴 것입니다. 아름다운 린이 어린 아들을 재워놓고 슥슥 삭삭 부처님을 그리는 소리를요.
린은 저의 서점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베트남 여인입니다. 몇 년 전 린을 처음 보았을 때는 한 겨울이었습니다. 인형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자그맣고 예쁜 아가씨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합장주를 하나 산 것이 인연이 되었지요. 합장주를 손목에 낄 때 슬쩍 보니 열 손가락이 모두 빨갛게 얼어있었어요. 그래서 물어보니 냉동꽃게를 손질한다더군요. 저도 모르게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 손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핸드크림을 주면서 꼭꼭 바르고 자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답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꼈는지 린은 자기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제 갓 서른이고,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고, 시집오자 곧 남편이 죽고 아들을 낳아 키우며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요. 그 뒤로 때때로 저를 이모라고 부르며 찾아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 사진을 보여줄 때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지요. 휴일에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절 마당에서 아들과 놀면서 염불소리를 듣는답니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큰 위안을 얻는다고 하네요. 아직도 우리말이 서툴고 한글도 잘 못 읽습니다. 평일에는 늘 일을 해야 하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봐야하니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린이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어요.
“이모, 나 부처님 그렸어. 보여줄까?”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기에 잘 그렸다고 감동을 해주니 너무 좋아하며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바로 린은 아들의 다 쓴 스케치북 겉표지나 공책을 뜯어서 아들의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선물이라며 가져왔습니다. 저도 미리 수성색연필과 물감과 붓, 스케치북을 준비해서 선물교환을 했습니다. 린은 고백하건대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으며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 날 그냥 부처님 그림을 보고 그려보고 싶더래요. 그래서 아들을 재워놓고 무작정 부처님을 그려보았는데 너무나 행복하더랍니다.

요즈음 린은 퇴근하고 아들을 재워놓고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에 푹 빠진 듯합니다. 이제 더 이상 슬프거나 외롭지도 않고 행복하기만 하다고 꽃처럼 활짝 웃습니다. 부처님을 생각만 해도 행복한 사람, 부처님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치유되는 사람, 린은 이렇게 스스로 행복한 부처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린의 톡이군요. 또 행복한 부처님을 그렸다고 톡을 보내왔습니다.

/글·김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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