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먹기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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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 - 먹기 명상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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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앞에 놓고 우선 생각을 멈추고
내 안의 호흡을 알아차리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노고와
흙과 햇볕과 수분과 씨앗의 인연 화합이
어떠했는지 생각합니다 ……
접촉과 동시에
짠맛, 매운맛, 단맛, 신맛, 쓴맛 등에서
생겨난 세 가지의 느낌을
마음 챙겨 바르게 이해합니다

욕계의 중생들은 살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식욕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오늘날 먹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식과 비만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많이 합니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과식過食을 조장하는 ‘먹방’이 한참 뜨더니, 요즘은 소식小食 ‘먹방’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면서 즉석식품이나 배달요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자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삼시세끼 ‘집밥’을 먹습니다. 가끔씩 외식을 할 때도 있지만 내자內子가 차린 정성스런 자연 밥상이 입맛을 돋우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갓 올라온 어린 콩잎으로 잡곡밥을 싸서 곰삭은 자리젓을 얹혀놓고 한 입 가득 먹으면 정말 꿀맛을 느끼게 됩니다. 삼겹살 묵은지 찜을 먹을 때는 내자의 사랑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식욕은 내자와 닮은꼴이라서 식단의 차림새에 대해 우리 사이엔 다툼이 없습니다. 식습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밥을 굉장히 빨리 먹고, 먹으면서 어제의 일들을 되새기고 또 출근 후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휩쓸러 갔습니다. 
먹으면서 어떻게 먹었는지 잘 기억하지도 못했고, 또 혼자서 먹을 때도 계속 다른 생각이나 망상에 빠져서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밥상을 앞에 놓고 우선 생각을 멈추고 내 안의 호흡을 알아차리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불특정 다수인의 노고와 내자의 요리 솜씨, 그리고 흙과 햇볕과 수분과 씨앗의 인연 화합이 어떠했는지 생각합니다.  
20분 이상 천천히 먹습니다. 먼저 국물 한술을 떠서 혀로써 국물에 닿도록 의도합니다. 이를 접촉(phassa)이라 하는데, 이것이 있을 때 마음은 음식의 종류와 맛과 냄새를 알게 됩니다.  
접촉과 동시에 짠맛, 매운맛, 단맛, 신맛, 쓴맛 등에서 생겨난 세 가지의 느낌을 마음 챙겨(正念, sati) 바르게 이해합니다. 
‘틱낫한’의 <먹기 명상 How to Eat>에서도 이런 마음의 작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위빠사나 명상에서 말하는 먹기 명상과는 질적 차이가 있고, 또 격이 다릅니다. 
혀는 감성의 물질이고, 그 대상인 덩어리진 음식도 모두 물질의 무더기[色蘊]에 속하고, 물질은 그 어떤 것이건 모두 지·수·화·풍의 4가지 근본물질과 거기서 파생된 물질(색깔, 냄새, 맛, 영양소 등)로 구성되어 있음을 식별합니다.
접촉을 우두머리로 해서 느낌과 인식과 의도(갈애)와 미각의식을 포함하는 정신이 일어남을 동시에 식별함으로써 먹기 명상을 통해 오취온五取蘊의 존재함을 인식합니다.
예컨대, 밥도둑인 ‘간장게장’ 또는 자리젓갈의 맛에 대한 갈애(tahā)가 일어난다면 이를 기뻐하며 거머쥐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이를 집착이라고 합니다. 12연기에서 6∼9번째의 고리, 즉 ‘촉-수-애-취’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음식에 대한 갈애는 거식증을 낳습니다. 대식가였던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에피소드episode를 소개하여 보겠습니다. 
세존께서 사왓티(코살라국의 수도)에서 동쪽 원림에 있는 녹자모 강당에 머무실 때 국왕은 양동이 분량의 음식을 잔뜩 먹고 숨을 헐떡거리며 세존께 문안 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
세존께서 국왕의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게송을 읊어서 국왕 스스로 과식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항상 마음 챙기면서 음식에 대하여 적당량을 알면 괴로운 느낌은 줄어들고 목숨 보존하며 천천히 늙어가리.”
국왕이 식사량을 적당하게 조절하게 되자 몸매가 호리호리하게 되고 건강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왕은 부처님과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하며 일찍부터 부처님과 교분을 맺으며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가장 중요한 재가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갈애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찰나집중이 필요한데 이러한 찰나집중은 오온에 대한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마음챙김(sati)을 통해 얻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접촉으로 시작해서 물질·정신과 인과(12연기)를 수관하는 것을 법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dhammānupassana satipaṭṭhāna)이라 합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수행자는 ‘덩어리진 먹는 음식’을 꿰뚫어 아는 지혜의 입구에 진입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단계의 명상 지혜를 ‘안 것의 통달지[知遍知]’라 부릅니다. 사다리를 타고 뾰쪽 지붕 위로 오르듯이 조건과 더불어 오온에 대해서 무상(anicca)·고(dukkha)·무아(anatta)의 세 가지 특상을 제기하여 통찰합니다. 이 특상을 꿰뚫는 명상의 지혜를 ‘조사의 통달지[度遍知]’라 부릅니다.
음식 맛의 본성에 관해 숙고하면 그것이 감각적 욕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그 욕망은 오염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소욕지족을 통한 완전한 앎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버림의 통달지[捨遍知]’라 부릅니다.
이 세 가지의 지혜가 완성될 때 수행자는 돌아오지 않는 님, 불환자(anāgāmi)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아들 고기의 경」(S12:63)에서 천명하고 있습니다.
식탐食貪은 발우에 놓인 단 한 조각의 음식에서도 일어나므로, 세존께서는 혀의 문에서 생긴 맛에 대한 하나의 갈애를 철저히 안다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머묾/사라짐을 철저히 알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탁발음식의 청정 경」 (M151)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는 탁발을 들어가는 길이거나 그 지역에서 탁발을 하거나 마을에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올 때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에 대해, 혀로 인식되는 맛들에 대해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내 마음에 있는지를 내관하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는 탁발수행이 사라졌습니다. 선방에서 참선한다고 도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화두를 던져 봅니다.

/恒山 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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