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처럼 - 나의 이마에 무엇을 새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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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처럼 - 나의 이마에 무엇을 새길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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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이 이마에
아미타불을 항상 모시듯이
저희들의 이마에는
항상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언제나 자비심을 내겠습니다
금강 스님(참선재단 이사장)
금강 스님(참선재단 이사장)

제주의 가을은 나에게는 단풍이나 국화꽃이 아니라 담채색으로 넘실거리며 춤을 추는 오름의 억새들이다. 20여 년 전 깊은 가을에 지인의 안내로 오르던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이 이마에 새겨진 듯하다. 다시 가을을 만나고 싶어 다랑쉬오름을 오른다. 제주도는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이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약 370개가량의 기생화산인 오름이 생겨났다. 모든 오름이 기생화산은 아니다. 오름은 순우리말로 산봉우리를 뜻한다. 오름은 제주도의 넓은 면적만큼이나 다양하고 각자의 매력이 있다.
오랜만에 오르는 다랑쉬오름은 숲이 울창하다. 분화구 둘레길에서는 억새밭 사이로 멀리 성산 일출봉과 가까이 예쁜 아끈다랑쉬가 보인다. 제주 방언 중에 ‘말 머리와 꼬리’의 날씨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는 날이다.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니 햇살이 쨍하다. 그 바람에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다르니 풍경도 다르다.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같다. 온갖 정보와 뉴스가 어제를 덮는다. 그래도 세상은 선의가 앞선다. 누구나 무엇이든 온갖 어려움은 극복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바다는 관광객에게는 낭만적이지만 현지 사람에게는 변화와 위험 요소가 많아 염원이 많다. 강원도 낙산사에 가면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1977년에 석재 7000톤으로 완성한 높이 16m의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많은 사람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구제해주는 자비의 상징인 신앙대상이다. 그 관세음보살상 이마의 보관에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신라의 의상대사는 서기 670년 이 낙산사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7일 동안 기도를 올리며 ‘백화도량발원문’이라는 글을 썼다. “성인과는 깨끗하고 더러움과 즐거움과 괴로움의 차이가 많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이마에 아미타불을 항상 모시듯이 저희들의 이마에는 항상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언제나 자비심을 내겠습니다”라는 발원문은 나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내 인생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대승경전인 『법화경』에는 석가모니의 출현은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고 가르치기 위해 나오셨다고 했다. 이것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곧바로 해인사를 향했다. 밤늦게 도착하여 사하촌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아침 일찍 절에 올랐다. 겨울 산사의 고요한 아침에 문득 노스님 한 분을 대웅전 앞에서 만났다. 젊은 청년이 의외였던지 물었다.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하러 이렇게 일찍 왔는가?” “전라도에서 왔으며, 출가하러 왔습니다.” “잘 왔네, 이번 생은 태어났다 생각하지 말고, 우리 공부하다 죽자”는 말씀에 마음속 다짐을 들킨 듯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나의 일대사인연은 ‘평생 수행자로 살자’가 되었다.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이마에 새기듯 나의 이마에도 제1 계율로 새겨졌다. 잠을 자도, 버스를 타도, 마을의 음식점에서도 생생하다. 수행자의 움직임은 법을 배우러 가거나 법을 전하러 가는 움직임이 수행자의 움직이라고 굳게 다짐도 하였다. 그래서 뜻 없이 나의 유희를 위한 움직임은 삼갔다.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 맛을 물으면 탐닉하기보다는 인연에 따르고 먹기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다가오고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법화경』에는 비와 초목의 비유가 있다. “하늘에 구름이 껴서 비가 내리면, 크고 작은 초목들이 그 비를 맞고 각각 서로 다르게 자란다. 이때 구름과 비는 일미(一味) 평등한 조건이고, 각각의 나무들은 사람들의 근기가 다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한 맛으로 가르침을 펴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근기에 따라 차별적으로 받아들여 이해함을 비유한다. 세상의 조건은 누구에게 같으나 마음의 중심에 따라서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다.
어리석으면 두 가지로 분별을 한다. 그것을 양변이라고 한다. 분별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욕심이 일어난다.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번뇌와 허망한 노력의 착각 속에 헤매는 것이다. 밖으로 보이는 것들에 집착함이 없어야 자유롭고, 마음속으로 아는 것들에 집착함이 없어야 고요하고, 마음이 열리고 세상이 열린다. 좀 더 단순하고 진실하고 본질적으로 살면 좋겠다.

※    이 글은 중앙일보  ‘삶의 향기’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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