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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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시간여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2.08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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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엔 김치나 자반고등어의
짭쪼롬한 맛이 전부인 상 앞에서
그마저도 감사했던 내 유년
기억의 한 자락은
전시된 화려한 물건 앞에서
마치 아득히 먼 시간이
어제인 듯 아프게 지나간다
이애현(수필가)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수필가)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박물관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된다”고 안내자는 낯선 주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반듯한 쪽마루로 이루어져 절제된 바닥양식이 생경스럽다. 익숙지 않은 요구는 전시된 작품을 보며 걷는 동안 충분히 반감되었다. 큰 전시공간을 말끔히 손질하고 정리해 놓은 마루는 발을 딛는 것조차 미안스러울 정도로 정갈했다. 
작가들의 전시된 작품을 보며 이어진 2층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자 가까이로 산방산 정경이 펼쳐졌다. 손 내밀어 휘저으면 금방이라도 물의 저항을 느낄 듯 자연은 이 박물관에 상당한 전시물을 보태었다. 아니 자연은 가만히 있었는데 박물관이 자연을 감쌌다는 게 맞겠다.
내려다보이는 곳 울타리 한 면은 꽃담으로 장식해 놓았다. 고궁이나 사극에서 보았던 꽃담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 색감도, 문양도 은근하고 고풍스러운 데다 고급스러움까지 더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옛것처럼 저리도 곱다니 놀랍다. 사극이 한 장면을 곁눈질하면 별당아씨가 스란치마 자락을 끌며 사뿐 금방이라도 꽃담을 돌아 나올 것 같다.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하고 돌아서는 마지막 전시실. 조각조각 세모시를 이어 놓은 것처럼 각양각색의 크기로 된 유리작품이 자리해 있다. 하나하나 헤집어 보면 크고 작은 사각형 색유리판인데 합쳐 놓으니 유명작품이라는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조화롭다. 색깔도 크기도 각각인데 잘 배열된 데다 적당히 할애한 면들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며 작품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모시로 전시한 벽면은 차라리 펼쳐 놓은 색감 고운 커다란 모시이불 같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다리를 건너왔는데 몇 발자국의 거리를 건넌 곳은 옛과 지금이라는 시대를 이어 놓고 있다. 내 관심은 온통 이곳 전시실에서 노느라 바빴다. 박물관 주인이 세월을 두고 모아 놓은 것을 전시했다는 말을 귀넘어 들었는데 호사스런 대갓집의 옛 생활모습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살림살이의 일부를 장롱이라 하여 한 뜻으로 쓰고 있으나 구분이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장은 내실에 놓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2층 또는 3층을 하나로 이어서 만든 것과 독립된 단층장 종류를 의미함이고, 농이라 함은 한 층 한 층 따로 된 같은 크기의 것을 2층 또는 3층으로 포개어 놓도록 설계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과 농은 분별해서 써야 됨을 시간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갓집 안방마님이 썼음직한 빨간색의 주칠 3층장이며 머릿장, 버선장 등. 화려한 문양의 세간들과 함께 이어 옛 물건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은 그 시대를 살아 온 여인들이 썼던 온갖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진열된 물건은 오롯이 그 당시 썼던 시간을 밟는 듯 세월마저 착각하게 했다. 전시실을 돌아보는 동안 놀란 내 눈은 화려함에 무척이나 바빴다. 다양한 종류의 복주머니, 아얌, 산호, 옥, 금과 은, 호박이 재료가 되어 여인들이 손때가 고스란히 엉겨 든 커다란 비녀와 머리 뒤꽂이, 가락지들이 형형색색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노리개는 꼰사를 써 곱게 만들었는데 길게 달린 오색 술은 색감마저 시간이 빗겨 갔음일까. 변색되지 않고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아우르며 전시실 안 조명 아래서 요요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규방 공예품들은 육지라 말하는 곳의 옛 여인들의 화려한 문화를 엿보는 동안 부러움 가득이다. 
영상물이나 인쇄물로만 봤었는데 저렇게 화려할 수도 있다니 생각들이 깊이로 잦아든다. 실물로는 생전 처음 대하는 생경스러움이다. 이어지는 공간은 베갯모의 곱고 화려한 색감이 수로 장식한 생활소품들이었다. 모자인 듯도 하고, 공인 것도 같은 둥근 모양의 화려한 색감의 누빔으로 된 물건을 보았다. 용도를 몰라 ‘대체 저런 것은 어디다 쓰던 걸까?’하고 궁금했다. 잠시 눈을 돌리자 바로 아래로 주발용기를 밥이 식지 않게 싸 보온하는데 썼던 물건이라는 설명이 붙여져 있었다.
밥솥이란 물건이 생기기 전. 어머닌 털실로 짠 손뜨개 목도리에 밥 담은 이모노라고 불리던 것으로 만든 주발을 싼 후, 벽장 위 이불을 포개어 놓은 곳에 꼭꼭 묻어 두었었다. 학교 파한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아예 차지만 않을 뿐 다 식어버린 밥주발을 다행인 듯 벌겋게 시린 동생 손과 내 손 위를 돌아가며 ‘그나마 온기가 남았을 것’이란 생각에 돌리며 동상이라도 걸릴까 봐 손에 잡고 있도록 했었다.
밥상엔 김치나 자반고등어의 짭쪼롬한 맛이 전부인 상 앞에서 그마저도 감사했던 내 유년, 기억의 한 자락은 전시된 화려한 물건 앞에서 마치 아득히 먼 시간이 어제인 듯 아프게 지나간다. 돌아서 본 곳의 부엌살림에서는 커다랗게 번쩍번쩍 불이라도 붙는 듯 화려함이 시선을 빼앗았다. 밥상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옻칠한 밥상이나 좀 좋다면 사각의 모서리 부분에 둥그스름하게 각을 내어 멋 내거나, 약간의 자개가 에둘러 붙은 것이 전부라 생각했었다. 윗면 전부가 보시기만큼씩, 더러 양푼만큼 온통 크게 자개를 음각으로 박아 놓은 크고 긴 상의 그 화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섬과 육지라는 거리감에서 받는 문화적 충격이었을까. 직접 쓰는 것은 못 봤어도 남의 집 물건이라도 설핏 봤더라면 충격은 덜 했을 것이다. 시간이 주는 간극인지 경제가 건네는 차이인지 그 충격을 어정쩡하게 모르는 척 돌아오는 길이다. 잘 장착된 차 안 내비게이션에 다음 행선지를 입력했다. 문화의 간극을 줄이려는 몸부림은 옛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 낼 것처럼, 스마트 폰으로 이어질 행선지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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