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금강경 - 다섯 번째 이야기① - “한정하지 않는 한정, 분별하지 않는 분별이 되는 것이 보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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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금강경 - 다섯 번째 이야기① - “한정하지 않는 한정, 분별하지 않는 분별이 되는 것이 보살입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2.0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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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분별과 한정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보살은 소통하는 모습으로 나투는
큰 침묵의 작용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살마하살은’은 무슨 뜻일까요? 보살은 보리살타 즉 보디사트바의 한자(漢字)음역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보디는 깨달음이라는 뜻이며 사트바는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깨달은 중생(覺有衆生)이 되겠지요.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개념들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중생’하면 흔히 어리석은, 못난 이러한 뜻으로 말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뜻은 글자 그대로 생명 가진 무리란 뜻입니다. 보살의 반대 개념으로서 중생이 아닙니다. 어떤 경전에서는 중생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생류(生流)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보살은 그 중생 무리들 중 개체가 아닌, 전체로 하나 되어 사는 중생을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하살은 ‘마하보디사트바’의 준말입니다. ‘마하’란 뜻은 ‘위없이 큰’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하살과 보살은 다른 개념일까요? 그것은 아니겠지요. 한 장면의 다른 모습입니다. 마하살은 보살이 큰 침묵 속에 들어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큰 침묵 상태 에서는 일체의 분별과 한정이 사라져 침묵(삼매) 자체가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자각도 소통도 멈추어 있습니다. 이 큰 침묵으로 하나 되어 흐르고 있는 상태를 마하보디사트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큰 침묵의 성품을 잃어버리지 않고 분별과 한정을 지닌 모습으로 나투는 모양을 보살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삶이란 자기 한정을 가지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생각 하나하나가 자기 한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생각을 표현한 낱말 하나하나가 자기를 한정하는 힘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그 한정을 우리는 분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분별과 한정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보살은 소통하는 모습으로 나투는 큰 침묵의 작용을 말합니다. 
마하살이 체(體)라고 하면 보살은 용(用)이 되겠지요. 보살이 한정과 분별을 지니지 않는다면 중생들의 인식에 잡히지 않게 되겠지요. 그러나 한정과 분별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근본의 체성을 여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정하지 않는 한정, 분별하지 않는 분별이 되는 것이 보살입니다.
불교에서는 생명들의 종류를 크게 유정중생과 무정중생이라 하여, 생각이 있는 중생과(有相) 생각이 없는 중생으로(無想) 나누며 그 모습에 따라 형상 있는 중생(有色)과 형상 없는 중생(無色)으로 나누고 거기에 생각이 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없다고 하기도 그러한 중생(非有想非無想)으로 나눕니다. 
유정중생의 생성으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 하나는 태를 빌려 태어나는 중생(胎生), 그 둘은 알을 빌려 태어나는 중생(卵生), 그 셋은 습한 기운을 빌려서 태어나는 중생(濕生), 그 넷은 스스로 변화하여 존재하는 중생(化生)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생과 난생에 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이고 습한 기운을 빌려 태어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효모, 박테리아, 곰팡이들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스스로 변화하여 존재하는 중생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쉽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귀신, 천상인간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무정중생은 산, 들, 바람 구름, 별, 해, 달, 바다, 강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유정도 아니고 무정도 아닌 중생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그것은 풀, 나무 등과 같은 식물들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 또는 중생이란 유정과 무정, 유상과 무상, 비유상비무상 등을 총괄하여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득 스님(와우정사 주지·한라정토회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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