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겨울 나목의 우듬지를 바라보며
상태바
출리산방의 엽서 - 겨울 나목의 우듬지를 바라보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2.14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목의 우듬지를 바라보면서
겨울을 벗 삼아 겨울의 소리를 듣고
무상함을 새겨 봅니다
해바라기하는 너의 촉을 보면
부질없는 욕망을 빈 지게처럼
허허롭게 털어 버려야 된다는 것을

 

 세찬 한파 속에서도
 한 그루 겨울 나목은 
 순례자의 침묵처럼 
 죽은 듯 외로이 서 있다
 머∼언 옛날 화려한 채색 옷
 다 벗어버리고 
 앙상한 모습의 자태만 남아 
 맨발로 뜰 앞에 서 있다
 
이는 탁여송 시인의 <겨울나목>이라는 시 구절로 유교의 수양방법인 신독愼獨을 아름답게 압축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 나목을 보면 모든 탐욕을 다 내려놓은 성자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봄·여름·가을의 나무보다 특히 눈여겨봅니다.  
출리산방의 남쪽 뜰에는 노거수 목련나무가 있습니다. 오늘은 붉은 단풍잎까지 다 떠나보내고 텅 빈 마른 나뭇가지를 매달고 처연하게 홀로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겨울채비에 나선 목련나무에는 우듬지(나무줄기의 맨 꼭대기 부분) 위로 뾰쪽하게 아린芽鱗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삭막은 잠시 기우일 뿐, 안으로 충만해 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파리가 무성한 여름에는 우듬지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동지를 앞두고 감나무의 우듬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태양을 향해 뻗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우듬지의 끝은 돛단배의 망루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선원과 같습니다. 나뭇가지에 닿은 햇볕의 상태를 찰나적으로 예의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낌새가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따사한 기운을 토하던 오후 햇살이 감나무와 목련나무의 우듬지에 찰나적으로 머물다가 슬퍼하거나 쓸쓸해 할 겨를도 없이 사라집니다. 
겨울 나목의 우듬지가 잠자던 나의 감성과 지성을 깨우고 있습니다. 각가지 이름표 떼고 벌거숭이 모습으로 나목처럼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우듬지가 해바라기하며 변신하듯 오욕락五慾樂을 찾아 촉(觸, phassa)을 세우고 아직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루 살펴봅니다. 
아름답거나 해롭거나 그 중간이거나 아무튼 마음이 일어날 때 반드시 접촉이 함께 합니다. 이 접촉의 기능이 없으면 마음은 결코 대상과 맞닥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과 형색에 의지해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이 셋의 만남이 눈의 접촉입니다. 두 손바닥이 부딪치는 것처럼 마음과 대상의 성질이 전이되어 옮겨가는 것은 접촉의 역할입니다.
예를 들면, 시큼한 라임을 먹는 사람을 보고만 있어도 느낌의 전이로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겁 많은 사람이 나무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를 떠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세상 경」(S1:70)에서 안과 밖의 여섯 가지의 접촉을 통해 찰나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알아차리는 여섯 가지의 마음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귀·코·혀·몸·마노[意]의 6가지 안의 감각장소[內處]와 형색·소리·냄새·맛·촉감·법의 6가지 밖의 감각장소[外處]의 접촉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학습과 경험에 통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때 아름다운 소리라고 압니다. 
그러나 그 형색이나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이와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지 않게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눈이 있고 모양은 다를 수 있으나 그 기능은 시각 장애가 없다면 똑같습니다. 눈이 형색에 묶여 있고 형색이 눈에 묶여 있다면 봄과 앎이 모든 사람에게 같아야 합니다.  
다른 이유는 이 둘을 조건으로 생겨난 욕망과 탐욕이 각자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대상과 상관없이 개개인의 마음이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게 밖의 경계에 대해 마음에 잡도리(manasikāra)할 때 형색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법(심리현상)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게 됩니다. 
이런 표상과 함께 한 인식은 느낌과 더불어 사랑하고 미워하고 집착하고 혐오하는 등의 정서적인 의도나 반응, 또는 반작용으로 발전해서 해로운 마음상태, 즉 번뇌와 오염원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이 여섯 감각 대상을 쫓으며 그것들에 매달리지만 그 어느 것도 그 자신을 절대로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는 강렬한 목마름 속에서 사람들은 격심한 고뇌의 바큇살 사이에서 뒤틀리고 찢기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광란의 질주를 단호하게 질책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나목의 우듬지를 바라보면서 겨울을 벗 삼아 겨울의 소리를 듣고 무상함을 새겨 봅니다. 해바라기하는 너의 촉을 보면 부질없는 욕망을 빈 지게처럼 허허롭게 털어 버려야 된다는 것을.
눈을 있는 그대로 알고보고, 형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보고, 눈의 알음알이를 있는 그대로 알고보고, 눈의 접촉을 있는 그대로 알고보고,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느껴지는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라고 묵언의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 恒山 居士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