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을 찾아서 - 혜국 스님 법문 -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 은혜 갚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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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을 찾아서 - 혜국 스님 법문 -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 은혜 갚아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2.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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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를 떠난 세계를 알아야
허공의 고마움을 알게 되니
마음 닦는 수행 부지런히 해야

지난 12월 8일 남국선원에서 혜국 큰스님이 스님들과 불자들을 위해 결제법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을 전하시면서 마음 닦는 수행에 정성을 다해서 임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법문 내용을 간추려서 이번호에 실었습니다. /편집자 주 

혜국 큰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큰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

부처님법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려우니
사람되고 부처님 정법을 만났을 때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하신 
부처님 유언을 익히 생각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필경정각하여지이다

옛날 스승들 걸어가신 발자국을 이렇게 돌아보면 지금부터 5~60년전 처음 절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돌아보면 돌아앉으면 공부 얘기요 공부가 안되면 부처님 앞에 와서 절을 하면서 ‘부처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면서 수행하는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절에서든 재가에서든 내 마음 수행하는데 그렇게 절절함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남국선원에 철마다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모여서 스님들이 정진할 수 있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선방에 한 번 결제했다면은 늘 열 번 스무 번 맞는 결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어쩌면 마지막 결제다 생각하고 결제다운 결제가 되도록 마음에 다시 한번 원을 세우고 다짐을 하십시오. 
세월이라는 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어렸을 때 해인사에서 영오 노장스님이 너 몇 살이냐 물었을 때 ‘스님 14살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니 스님이 14살이면 거북이구나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거북이처럼 세월이 안간다는 말입니다. 그 어른 말씀이 20살이면 소가 걷듯이 세월이 걸어가고 40, 50에는 개가 뛰듯이 세월이 뛰기 시작하고 60이 되면 비호처럼 세월이 날아간다고 하셨습니다. 노장스님이 70이 넘어가면 ‘휙이다 휙’이라 하셨는데 정말 세월은 나이와 비례합니다.
우리가 결제 한 번하는 것이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다겁생래로 얼마나 많은 원을 세워서 출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부모를 만나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고 부모님 가슴에 그 아픈 상처를 내고 출가를 했습니다. 한평생 홀로 그 어려운 이 길을 가면서 이 공부 못해 놓는다면 참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때 용납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결제를 보내야 될 것입니다.

스승들이 살아온 것을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간화선을 하고 참선할 수 있도록 한 스승님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 이래로 중국의 법이 우리나라로 전해지고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만큼 간화선이 살아있는데가 드물다고 자타가 인정을 하는데 그 가운데 한 두 분 스승만 없었더라도 우리는 참선법을 배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 스승들이 수없이 전해준 그 은혜를 봐서라도 나는 오늘 어떤 발자국이 찍고 있는가. 눈 온 데로 걸어가면 걸어간 대로 발자국이 찍히는데 게으름의 발자국이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부끄럽고 가장 보기 싫은 발자국입니다. 얼마나 해야 부처님께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부처님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스승들이 게으름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핑계를 대서 한 번 게으르기 시작하면 놔버리고 지내고 시간은 훨씬 많고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 안되니 부디 게으르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선방 스님들과 참나가 있느냐 없느냐 얘기하다가 다 못하고 일어섰는데, 참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이말 자체가 선지식이 있다면 방망이를 맞을 일입니다. 인간들은 있다 없다 양변에 치우쳐 있지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서 존재 자체가 돼버리는, 존재 자체를 니르바나라 하고 공성이라고 하고 연기법이라 하는데 있다 없다를 떠나서 우리 모든 번뇌망상을 떠난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조상들을 정말 잘 만나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도 만족을 못해서 OECD 국가에서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라고 합니다. 조상들이 애써서 잘 먹고 잘사는데도 그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질문명을 이뤄놓았지만 정신적인 교육,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런 일은 해서는 안된다는 이런 교육 못시켰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수행하고 어떻게 닦아야 하고 어떻게 무장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정신문명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내 마음은 나만 닦을 수 있지 내 마음을 내가 닦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질 문명 가지고 인생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 신도님들도 내 조상들이 갈 때 뭘 가지고 갔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빈손으로 갔습니다. 여러분 아들딸들도 사후라든지 늙음에 대해 여러분을 책임 못집니다. 지금까지는 아들딸에게 정성을 다했으면 나는 뭘 가지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내 마음이 애착과 집착과 근심 걱정이 있으면 지옥이라. 내 마음에 무엇이 만들어졌을까. 지금은 80, 90을 보통으로 사는 세상이라.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참선법. 홀연히 무변 허공이 돼서 우주 전체가 내가 되고 내가 우주 전체가 되면 있다 없다는 세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주 진여 자체가 공성이란 말입니다. 텅빈 내 고향 본래 내 마음 고향, 그게 내 본 모습이다. 그걸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일체 하던 행동을 끊어두고 ‘이 뭣꼬?’ 아무 것도 없는 있다 없다를 떠나서 오직 모를 뿐인 그 자리, 좋다 나쁘다 비교하던 것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적적과 성성이 하나인 그런 자리를 간화선이라고 하니, 간화선을 지금까지 전해준 스승의 은혜가 적지 않습니다. 신도님들도 하루에 30분만이라도 내 마음의 고향, 공성의 세계를 돌아보자, 정진들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대매 스님이 마조 스님을 찾아가서 ‘어떤 것이 참나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마조 스님은 ‘네 마음이 부처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마음이 과연 무엇일까. ‘보고 듣고 하는 이게 마음 아닙니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닙니다. 파도란 바다다. 바람만 잦으면 파도란 없다, 이러한 세계를 분명 보고 나면 ‘마음이 부처다’ 하는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어떤 것입니까’하고 물으니 육조 스님께서 ‘앞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스승 한 분 계시고 안 계신 차이가 엄청난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앞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까. 우리는 앞생각이 난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 버린 생각이 내 안에 꽉 차서 그게 나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앞생각이 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생각을 가만히 돌아봐요. 서울의 한강을 보더라도 아침에 본 강물은 벌써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그 강물을 다시는 볼 수가 없는데 그 강물을 보는 거라고 생각하듯이 우리 마음안에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꽉 붙들리고 때로는 마음에 기억이 돼서 그게 아뢰아식을 만들고 그걸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나라고 생각하는 동안은 마음하고 십만팔천리라. 
대매 스님 같은 경우는 ‘마음이 부처다’하니 척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앞생각이 나를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앞생각 딱 끊어진 자리는 화두하는 자리라. 왜 뜰앞에 잣나무라 했는가. 안팎이 나눠져서 바깥으로 찾는 참선은 천날을 해도 안 됩니다. 안으로 하는 참선은 조주 스님은 벽을 허물어버린 분이라 우주 전체가 공성이니 내 마음이 뜰앞에 잣나무니라. 내 안에 조주 스님의 뜻, 내 안에서 뜰앞에 잣나무라는 뜻이 하나가 됩니다. 대매 스님은 그걸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길로 바로 대매산에 들어갔습니다. 대매산에 가서 몇십 년을 살았단 말입니다. 

 

염관선사의 제자가 산에 주장자 나무를 끊으려고 갔다가 길을 잃어 헤매다 대매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 이 산 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하고 물으니 대매 스님이 ‘나무가 푸르르고 낙엽지는 것을 몇십 번 본 것 같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제자가 그러한 모습을 떡 보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이 산중에서 평생을 보냅니까’하고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대매 스님은‘ 마음이 부처니까. 그 마음을 닦아나가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하고 대답합니다. ‘그 마음이 나’이기 때문에. 본래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한 시간 애쓰면 애쓴 만큼 없어지질 않아요. 있다 없다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제자는 ‘스님, 제가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하니 대매 스님께서는 길 찾는 것은 두 가지로 능선을 올라가면 언제나 길이 있게 마련이고 물소리 듣고 물따라 가면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온다고 대답해줍니다.             (다음호에 계속)

/ 정리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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