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정사 우득 스님의 동지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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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정사 우득 스님의 동지 법문
  • 글·정리 김희정 객원기자
  • 승인 2023.01.03 2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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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을 끓일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팥죽 끓이는 일과
하나가 되어 끓인다면 그것이 부처님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폭설이 내려 화이트 동지가 되었습니다. 사시에 맞춰 동지 불공을 드리러 오던 이들은 모두 되돌아가고, 법당 청소를 하려고 혹은 대중공양을 위해 조금 일찍 서둘러 온 다섯 사람이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네요. 밖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래도 여느 법회처럼 예불을 마치고 스님의 짧은 법문도 있었답니다. 
 
눈 속에 동지 법회에 참석하셨는데 얻어가는 게 있어야죠. 법문 한마디 하겠습니다. 쌀로 죽을 쑤면 쌀죽이라고 하고요, 깨로 죽을 쑤면 깨죽이라고 합니다. 콩으로 죽을 쑤면 물론 콩죽이라고 하고, 팥으로 죽을 쑤면 팥죽이라고 하지요.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복은 받고 싶어하면서 복 짓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복을 짓는 일일까요? 재물을 보시하는 거, 다른 이를 돕는 거, 그밖에 착한 일들도 다 복을 짓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복을 짓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면 그 세계가 극락입니다. 어디 지구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 잘 생기고 예쁘더군요.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거친 말들을 들어보면 무섭습니다. 과연 그들의 마음에 극락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지금 마음이 편안하고 극락이면 내일도 편안합니다. 그러니 성 안내는 얼굴이 극락을 만들고 부드러운 말이 극락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에 반해 아수라 세계는 나누고 분별하는 세계입니다. 너와 내가 있으면 거리가 있고 거리가 있으면 시간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하나 된 세계가 아니며 일심一心이 아닌 것이죠. 그래서 분열이 생기고 다툼이 생깁니다. 결코 행복한 세계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릅니다. 그런 마음은 축생의 마음과도 흡사하지요. 축생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야 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본능대로 살던 방식을 계속 되풀이할 뿐이죠.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자기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 처럼요. 그래도 사람은 괴로움을 느끼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것을 우리는 향상심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한 방편으로 우리를 향상심으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하나 되는 법은 따로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하나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와 하나 되어 사는 행복한 삶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진선 보살님이 팥죽을 끓일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팥죽 끓이는 일과 하나가 되어 끓인다면 그것이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팥죽을 맛있게 먹으면 우리는 부처를 한 그릇 먹는 셈입니다. 자, 다들 진선 보살님이  일심으로 끓인 부처님 한 그릇씩 먹어봅시다.

이날 선흘에 사시는 노보살님께서 동백동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손수 도토리묵을 쑤어서 보자기에 꽁꽁 싸서 버스를 타고 눈보라를 헤치고 오셨답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도토리묵은 일심一心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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