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석 - 마가스님 백일명상 - “보시와 공덕은 삼독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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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석 - 마가스님 백일명상 - “보시와 공덕은 삼독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수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1.0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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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으로 등불 나누는 실천행이
우리가 가야 할 수행의 길
법문을 하고 있는 마가 스님
법문을 하고 있는 마가 스님

기도는 단순히 입으로 염불하고, 손으로 사경하고, 앉아서 명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기도를 마친 뒤 원하는 바를 성취한 다음에 시작됩니다. 기도가 씨앗을 심는 행위였다면 진정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씨앗을 싹틔우고 돌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원하는 것을 이뤄달라는 기도는 복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복은 그냥 받을 수 없습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행동을 하고, 공덕을 쌓아야 비로소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부처님, 제게 복을 많이 주십시오”가 아니라 “부처님, 제가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 지금부터 000을 실천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 복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끝이 자연스럽게 보시, 공덕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보시와 공덕은 삼독(욕심,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공덕에 대한 부처님 말씀입니다.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기뻐하니 이 세상에서도 기뻐하고 저 세상에서도 기뻐한다. 자신의 업의 청정함을 보고 기뻐하고 환희한다.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한다. ‘내가 선을 지었다’고 환호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 -《법구경》
“마치 하나의 횃불로써 수십만 사람들이 제각기 횃불에 불을 붙여가서 음식을 짓거나 등불을 켜더라도 그 하나인 근본 횃불은 조금도 손상이 없는 것과 같이, 보시의 복도 그와 같이 다함이 없다” -《사십이장경》
“마음이 법法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데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은 마치 밝은 햇빛 아래에서 온갖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금강경》

이처럼 기도가 끝난 뒤에는 나의 습관을 살펴서 알아차림 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좋은 습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주변에 나누고 보시하는 공덕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밝은 등불을 밝혔다면, 내 주변으로 그 등불을 나누는 실천행이 우리가 가야 할 수행의 길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진정한 기도는 수행으로 이어집니다. 수행의 목적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있지요.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괴로움은 모두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에서 비롯됩니다. 이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왕궁을 나왔습니다. 
싯다르타는 많은 스승을 만나 토론했고, 당시 성행하던 여러 수행법으로 진리를 깨달으려고 했습니다. 하루 한 방울의 죽을 먹고 호흡을 멈추는 등 6년간의 극단적 고행에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고행을 멈춘 싯다르타는 몸을 씻고 우유죽을 먹은 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명상에 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근원적 괴로움을 해결하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깊은 선정에 들어 깨달은 진리란 이 세상에 ‘나’라는 실체는 없으며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무아’와 ‘연기’입니다. 무아와 연기의 진리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자비’로 이어집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우리는 ‘나’라는 상(相)에 집착해 온갖 번뇌를 일으키며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깨달음 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팔정도를 설하셨고, 45년 동안 열반에 드실 때까지 팔정도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팔정도를 따르면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실체 없음을 알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이 바로 사성제와 팔정도입니다. 

사성제, 고성제는 무엇이 괴로움인가. 고(苦)란 생로병사를 말합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모든 것이 고통입니다. 미운 사람을 만나서 괴롭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서 슬프고,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져서 괴롭습니다.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괴로움의 원인은 ‘나’에 대한 갈애와 집착입니다. 멸성제는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고 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면 괴로움은 소멸됩니다. 도성제는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집착과 갈애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한 8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팔정도입니다.

8정도,     정견正見(바른 견해)은 바르게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로써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참과 거짓을 판단합니다. 우리 삶의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는 바른 견해에서 바른 생각과 바른 의지가 나옵니다. 바른 생각은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의 바탕이 됩니다.
정어正語(바른 말)는 거짓말이나 나쁜 말, 거친 말, 남을 속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고 진실된 말,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정업正集은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는 모든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말합니다. 정명正命은 바른 직업을 가지고 바르게 생활하는 것. 잠자고 밥 먹고 일하고 휴식하는 등 모든 일상을 바르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 나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그런 마음이 일어났다면 없애는 것, 선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념正念은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과 무상(無常,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과 무아(無我 ‘나’라는 실체가 없음)를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정正定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평정(선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선정은 텅 비어 생멸이 없는, 무념무상의 자리로, 여기에서 지혜가 나옵니다.

이 중에서 ‘정정(正定)’은 팔정도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른 집중에서 일어난 지혜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른 집중은 단순하게 정리하면,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정정(正定)’은 팔정도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른 집중에서 일어난 지혜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른 집중은 단순하게 정리하면,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정리 임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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