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낯설게 바라보기 (8) - 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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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낯설게 바라보기 (8) - 산담
  • 글·수월심 김현남 불자
  • 승인 2023.01.11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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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울타리의 돌담을 ‘집담’
밭의 돌담을 ‘밭담’
무덤의 돌담을 ‘산담’ 이라 했다

성산일출봉에서 보는 해돋이는 아름답다. 희망차다. 새해 떠오르는 첫 태양은 특별하다. 그러나 나는 새해 아침, 죽음을 생각한다. 새해에 죽음을 생각하면 생이 또렷해진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해 보다 성의 있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된다.
제주도에서 지내며 강력했던 문화충격은 버젓이 밭 중간에 있는 산과 산담의 존재였다. 육지에서의 무덤은 산 속 깊은 곳, 그래서 성묘를 가려면 등산을 각오해야 하는 곳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산이라고 부르는 무덤이 가까이에 있어 죽은 자와 산자가 공존한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은 순환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삶 속에 묻어있다.
제주 민요 중에서 ‘청산에랑 어멍을 묻곡 녹산에랑 아방을 묻곡 청산 녹산 서녹산새에 불리는 건 눈물이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거기에 딸린 해설을 보면 이 노래에서 산에 집을 지었다는 표현은 돌아가신 부모를 장사 지내서 묘를 만든 것에 종종 비유된다. 청산에는 어머니를 묻고, 녹산에는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또한 제주사람들은 무덤을 묘라 부르기보다 그냥 ‘산’이라 표현한다. 또한 묘 주변에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만드는데, 이를 ‘산담’이라 부른다. 그래서 조상의 묘소에 찾아가는 것 또한 ‘산에 간다’라고 표현한다. 오름 사면에 오름의 형태와 비슷한 산과 산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저 민요의 산은 산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오름에 무덤이 많은 이유는 한라산 자락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생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오름에만 무덤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밭에 묘를 쓴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지관(地官)이라 불리는 풍수사가 묘 자리를 잡아준 경우라고 한다.
산담, 집담, 밭담 등을 흑룡만리라 하며 그 아름다움과 미학을 이야기하지만 더 깊은 속내가 있다. 산담을 보면 그 집안의 가세를 짐작할 수 있다. 잘사는 집안인 경우 장방형을 원칙으로 하고 여의치 못하면 홑담, 그도 아닌 경우 산담이 없기도 하다. 형편이 안 될 경우, 남의 산에 몰래 부모묘를 써서 그것이 가슴에 한이 된 자식들도 있다. 오름 꼭대기에 묘가 위치한 경우 오름 아래의 돌을 가져다가 산담을 쌓는다. 이때 마을 청년들을 일꾼으로 쓰는데, 돌 한 덩어리 기준으로 금전을 지급했기에 가난한 집안에서는 엄두도 못 내었다. 죽어서도 돈이 드는 일, 어쩌면 부의 또 다른 상징이다.
육체의 종료는 피할 수 없는 끝이다.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지거나 단지에 들어가 납골당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끝은 그럴 것이다. 죽어서 꼭 고향, 선산에 묻혀야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곳에 남고 싶다. 제주의 장례풍습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매장이 금지되었으니 새 산담이 생길 수는 없다만 나는 중산간 어느 오름에 산이 되고 싶다. 겹담 양식의 장방형 산담을 검은 현무암으로 두르고 오른쪽에는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시문(神門)이 있는 산담을 갖고 싶다.
시문이 없는 경우에는 평평한 돌로 계단모양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그 계단을 통해 신이 드나든다는 의미라니 그런 산담을 가져도 좋으리라. 죽은 후 갖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 이것도 산 자가 할 수 있는 사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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