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이런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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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이런 사람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1.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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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망에서 자기의 소신을
가진 이와 함께 이고 싶다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새로운 한 해가 열렸다. 새것, 새로움의 의미가 특징 지을만한 어떤 것도 아닌 채로 지난다 해도, 그것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늘 설레게 한다. 그 설렘은 삶에서 희망이라는 활력소가 되어 일상에서 소소하게 부딪히며 불편하거나 마음 상하는 일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상흔을 쉬 아물게 하는 근원이 될 때도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는 삶에 강한 긍정의 힘으로 작동하여, 새로움에 대한 의미를 재부여하고 강한 긍정의 힘은 또 다른 것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별 의미 없이 지난다 해도 그것의 가치를 생각하며 기다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긍정의 힘은 또 다른 부정인 것과 대치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강한 의지와 함께 정신적 안정과 내가 가진 강점을 강화시키고 또, 지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이야 아이를 너무 안 낳아서 사회를 넘어 국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말과 표어가 사방팔방에 붙어 나풀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셋만 되어도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되는 등, 불이익을 받던 때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정서에서 오는 분위기라는 것은 참 무섭다. 흐름에 맞춰 그 당시 아이들은 이 집 저 집 구분 없이 두 명이 대세였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지금처럼 자가용이란 것이 흔치 않을 때라 아이 셋을 데리고 버스라도 타려면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심지어 미개인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마음 상할 때도 있었다. 많이 낳지 않기에 남아 선호사상은 더욱 팽배하여 아들은 꼭 낳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은근히 받을 때였다.
한 친구가 딸 둘을 두어 심적 중압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때다. 그러던 중 셋째를 임신하면서 그 중압감이 더해졌던 게다. 고민 끝에 병원을 다녀와야 하는데 아이를 봐 줄 사람도 딱히 없고, 같이 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같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진료실로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안에서 호통치듯 큰 소리가 나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친구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왔다. 
우리 애와 그 친구 딸 둘도 같이 데리고 있던 터라 엄마 얼굴을 보더니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우리 애들은 덩달아 부조하듯 울어 순간 병원 복도는 생난리였다. 얼른 밖으로 데리고 나와 애들한테는 과자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는 병원 근처 나무 그늘에 앉아 들은 이야기는 그랬다. 
남편이랑 밤새 의논 후, 진료 시 중절이란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산모 몸은 생각 않느냐, 그렇게 하면 얼마나 몸이 상하는 줄 아느냐’고 얼레다, 급기야 호되게 한 소리 들은 것이었다. 훌쩍이는 친구 마음 달래느라 ‘돈 받고 그냥 해주면 될 일을…’하며 어색하게 말부조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정서로야 웃긴다 하겠지만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아들은 단순히 남녀라는 성별의 의미만이 아니다. 엄마의 존재가치를 상승시키고 집안 어른들께도 확실하게 인정받는 기회가 되고도 남던 시절이었다. 특히 둘만 낳자던 때라 더욱 그랬다. 이후 친구는 원하던 아들을 낳았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삼십여 년이란 시간에 생각을 가두고 있던 어느 날, 친구는 해묵은 이야기를 햇살 속에서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때의 시간들을 당기듯 말을 한다. 그때는 부끄러운 마음에다 자존심도 무지 상했었단다. 곱씹어 보면 돈이나, 그 어떠한 것보다 사람을 우위에 두고 소신껏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요즘은 흔치 않은 것 같다며 오래전, 따습고 환한 기억을 더듬어 풀어놓았던 일이 생각난다. 들으며 맞장구쳤다.
새롭다는 것에 기대어 올 한 해, 시간을 같이 나눌 인연들은 친구의 말처럼 실리보다 조금은 대의에 더 가치를 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망에서 자기의 소신을 가진 이와 함께 이고 싶다. 그러다 그 언젠가 내 친구의 일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라도 잊은 듯, 문득 떠올리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 그런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만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고 마음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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