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에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등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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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에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등 밝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1.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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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시작되어 현대까지 이어져
현대의 제야행사는 전통에서 비롯
무령왕릉 등잔
무령왕릉 등잔

요즘도 그렇지만 전통사회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는 길흉화복이 필연적인 인간사에서 나쁜 기운은 쫓아 좋은 기운을 맞기 위한 의례로 나타났다.
제석(除夕, 섣달그믐날 밤) 의례 중 대표적인 것은 수세(守歲)다. 수세는 표면적으로는 제석부터 원일(정월초하루) 아침까지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는 풍습이다. 수세는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화장실과 외양간, 창고 등 집안의 모든 장소에서 행해졌다. 특히 민간에서는 부뚜막에 불을 밝히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이는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竈王神)이 섣달그믐 천신(天神)에게 그 집안에서 일 년 동안 일어났던 일을 낱낱이 보고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에 수세의 풍속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고려에도 수세가 있었음은 확인된다. 또한 고려 때 길거리에 불을 밝혀서 역질(疫疾)을 쫓는 나례(儺禮)가 섣달그믐 행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 역사는 훨씬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세의 전통을 중국에서 찾기도 한다. 《동국세시기》 의 소동파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풍속을 기록하면서 ‘술과 음식으로 서로 초청하는 것을 묵은해를 전별한다는 뜻으로 별세(別歲)라 하고 섣달그믐에 날을 세는 것을 수세라 한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수세에 사용하는 등잔을 “제석등잔”이라 하는데 길거리 상점이나 행상 등을 통해 구입했다. 제적등잔은 주로 사기로 만들었으며 형편에 따라 사용하던 토기나 자기를 최대한 깨끗이 닦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급 수입등잔인 옥이나 대리석 등잔도 있었는데, 이는 주로 왕실이나 사찰 등에서 사용했다. 사찰에서는 이 석등잔을 선등(禪燈)이라 하여 기원용으로 사용했다. 등잔의 기름은 참기름을 썼으며 한지를 말아 만든 심지를 사용했다. 특히 심지는 불을 밝게 하기 위해 심지를 두 개 사용하는 쌍심지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특정한 장소에 불을 밝히는데 정성을 기울이기도 했다. 대청마루의 성주불, 우물가의 용왕불 등이 대표적이다. 경북 북부지방에는 액맥이라고 하여 제석에 켜놓은 촛불을 훔쳐가는 풍속도 있었다. 이때 촛불을 훔치다 들켜서 욕을 먹으면 길하다고 하여 억지로 들키기도 했는데, 이를 “명도적(命盜賊)”이라 한다. 또한 긴 겨울밤을 졸지 않고 보내기 위해 윷놀이 · 저포놀이 등을 하고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곶감과 볶은 콩 등을 먹었다. 제석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속설도 있었는데, 이는 당시에도 미신으로 치부해 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놀이로 변형돼 원일 아침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아이를 놀리기 위해 눈썹에 하얀 가루를 묻혀서 놀래키는 역할로 쓰였다.
충남의 장고도에는 “등불써기”라는 행사도 진행된다. 등불써기는 등불싸움, 등불놀이, 등맞이라고도 하며 풍요를 바라는 놀이다. 의식은 마을사람들이 등을 들고 두드리며 마을을 돌면서 걸립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지식밟기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장고도에서는 해마다 등불써기를 하지 않으면 마을에 궂은일이 발생한다는 속설(俗說)이 전한다.
함경도 풍속에는 섣달그믐 빙등(氷燈)을 설치해서 밤새도록 밝히기도 했다. 빙등은 아름드리 기둥 같은 초롱 속에 기름 심지를 안전하게 놓고 불을 켜는 등으로, 얼음의 안쪽을 파서 등잔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밝힌 것으로 추측된다. 빙등은 나례와 제례의 조명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례는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한바탕 놀이를 펼치는 행사로 궁중에서도 행해졌다. 이때는 연종방포(年終放砲)라고 하여 궁중에서 큰소리로 포를 쏘아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을 함께 행했다. 이런 풍습은 현대의 제야행사에 영향을 주었다.
섣달그믐 풍속은 언젠가부터 잊혀진 전통이 됐다. 그리고 과거처럼 집안 곳곳 불을 밝히며 한해를 맞는 일도 우스운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새해를 맞는 인간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가오는 제야에는 차분히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성스럽게 마음의 등불을 밝혔으면 한다.

/글·김두희 (불빛나들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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