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득 스님 입춘 법문 - 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불도를 닦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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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 스님 입춘 법문 - 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불도를 닦는 것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2.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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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입춘입니다. 보통 음력 1월1일을 설이라고 하고 새해라고 하지요. 이것은 중화문화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동지라는 절기로 긴 겨울을 끝마치고 입춘이 되면 그때를 새해로 쳤습니다. 왜냐하면 입춘이 되면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삽을 세울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을 세웠다고 하며 立春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입춘이 되면 절에서 입춘불공을 합니다. 방편으로 액을 막는 액막이를 태우기도 하고, 부적도 하나씩 나누어주고, 立春大吉, 建陽多慶 등등 길한 뜻이 담겨있는 사자성어를 적은 입춘지도 줍니다. 이것이 보통의 절 풍경일 것입니다. 
(입춘지를 들어 보이시며) 여기 이 입춘지에 우리가 바라는 吉祥의 내용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집안에 붙여놓으면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봄을 맞는 좋은 기운은 밝은 마음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기운을 끌고 와서 입춘대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과연 이 입춘지가 필요할까요?
생각이 굳어지면 관념이 되고, 굳어진 생각은 현상계에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그만큼 사물과 사람과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즐거움이 반, 괴로움이 반입니다. 하지만 괴로운 일이라고 딱히 정해진 어떤 일은 없으며, 즐거움이라고 정해진 어떤 일 역시 없습니다. 흔히 아시는 人生事 塞翁之馬 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금강경을 통해서도 부처님은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無有定法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고요. 이 말씀을 하실 때조차 부처님은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못 박지 않으시고, 是名이라 하셨지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니 ‘그렇다’ 라고요. 그것이 진실입니다. 모든 것은 이름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출가를 해서 공부를 할 때 운수를 좀 보시는 어떤 분이 저더러 돈복이 없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돈복이 없다니 중노릇은 제대로 하겠군.’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넘치면 중노릇 잘하기가 힘들겠지요. 
또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동네 절에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니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들이 장가를 못가고 혼자 살 팔자라는 얘기를 듣고 그리 열심히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는 한없이 충격이었겠지만 이게 어디 나쁜 일입니까?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오히려 저를 부러워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이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러워 보이고 성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괴로움을 깔고 있습니다. 복이라는 것은 화 위에 세워진 탑입니다. 그것을 바로 볼 수 있다면 따로 구해야할 복과 막아야할 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경에 있는 이야기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처럼 입춘이라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 해놓고 보니 문밖에 길상천녀가 찾와 왔더랍니다. 당연히 버선발로 뛰어나가 어서 오시라며 맞이했겠지요. 그런데 조금 이따 흑암천녀가 뒤따라 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당신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오냐며 안 된다고 밀어내었죠. 그때 길상천녀가 말하지요. 
“언니와 저는 한 몸이라 혼자 들어갈 수 없어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보살의 삶입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도 모두 비우는 것을 뜻합니다. 貪瞋痴 삼독을 비워내면 빈 마음이 되지요.  그것이 그대로 선정이고, 지혜입니다.
누가 나를 스님! 하고 부르면 듣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이 신령스러움이며,  그 마음이 천연 지혜입니다. 불도는 밤새워 용맹정진을 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불도를 닦는 것입니다.

/ 우득 스님 (와우정사 주지 / 한라정토회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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