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표해록』 해부- “특별히 덕을 베풀어 우리 여러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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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표해록』 해부- “특별히 덕을 베풀어 우리 여러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2.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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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와 번갯불이
검은 구름 사이에서
요동치며 번쩍였다
고래 자라 거북들이
파도 사이에서
뛰어오르며 바삐 움직였다

1770년 12월 30일 비

쌍 전복(진주)

장한철 표해록에 전복과 귤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수록 돼있다. 이는 제주라는 자연환경과 호산도에서 느끼는 감정이 고향이라는 매체와 덧붙이며 향수 아닌 특산물(전복 감귤)에 대한 애정 어린 표현도 있었음이다.
감귤과 전복은 당시 우리나라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에서만 나는 특산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호산도에서 수많은 전복(자연산)과 감귤을 배불리 먹을 만큼 열린 두 그루(자연산)는 관련이 깊기에 최근 웰빙과 견주어 볼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장한철 표해록에 의하면 당일(30일) 아침부터 비가 오는 데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쏟아 붓듯이 퍼부어댔다 한다. 여기서 장한철의 과장된 허풍도 들어나는 데 사실 장한철 표해록은 그 필력이 대단한 걸로 나타난다. 제문을 고할 때 설문대할망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등 장한철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소개하기로 한다.

여러 사람들은 빗줄기를 피해 모두 초막 안으로 비좁게 끼어들어 왔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초막 안은 좁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이 바닷물이 스며드는 배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하였다.


여기서 보면 임시 거처로 초막집을 지었는데 세찬 비바람에 바닷물이 스며들어 그냥 배 위에 있는 듯 초막집이 둥 떠 있음을 알 수 있는 데 그래도 살아야 겠다는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음에 조금은 안도해야 할 것 같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과장법을 최대한 살렸다나고 할까? 장한철의 필력이 대담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검은 구름으로 휩싸이고 바다가 어두워지면서 파도가 펄펄 끓듯이 솟아올랐다. 갑자기 천둥벼락이 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가 싶더니 캄캄한 바다와 산과 들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가 가히 하늘과 바다를 집어 삼킬 듯하였다. 갑자기 한 무리 검은 구름이 천둥번개를 동반하여 바다를 두 동강 내는가 싶더니 바다 위를 가로질러 하늘로 올라갔다. 천둥번개는 처음에는 짧다가 점점 길게 커지더니 하늘도 두 조각내며 바다에 꽂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검은 구름 사이에서 요동치며 번쩍였다. 고래, 자라, 거북들이 파도 사이에서 뛰어오르며 바삐 움직였다. 정말로 인간 세계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장관이었다.


장한철 일행이 인간 세계에서 보지 못한 광경은 먹구름과 하늘과 바다에서 꽂힌 물체가 땅덩어리를 흔들다는 것은 신기한 용의 조화를 부린 것이라 믿었다.
잠시 후 바다 위에서 서로 엉켜 돌고 돌며 위로 올라 공중에서 층층을 이루고 천둥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서북쪽 하늘로 사라지고 구름이 걷히고 비가 개어 바다와 하늘이 다시 맑아지니 탐라산인들은 바다의 신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때 탐라 상인 양윤하가 초막에서 밖으로 나가 땅에 엎드리고 용을 향해 빌면서 말했다.
“용왕님의 행차가 이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엎드려 빌고 우러러 향을 피워 아룁니다. 특별히 덕을 베풀어 우리 여러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이어 양윤하는 초막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장한철 일행은 모두 밖으로 나가 바위 앞에 엎드려 탐라 상인 양윤하가 빌듯이 따라 빌었다.
그 용험이 나타난 걸까? 세찬 바람이 멈추고 바다는 숨죽이듯 조용해지며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날이 맑자 장한철 일행은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잡았다. 
여기서 장한철 일행 중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딴 사람은 아마 평상시에도 바닷일을 할 때 작살을 들고 바닷속에 들어가 전복을 잡았음이기도 한데, 이를 해남이라 부른다.
해남은 남자해녀를 이룸인데, 다음 회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전복 따는 해남이 일을 마치자 장한철 일행은 산꼭대기에 올라 마를 캐기도 했다.
장한철 일행이 저녁이 되자 한데 모였다.
일행이 모아 논 양식을 보니, 산나물이 옷섶에 가득하고, 해산물이 광주리에 넘쳐 났다.

“이 전복이 아주 큽니다. 제가 회를 쳐서 올리려고 특별히 갖고 왔습니다.”


탐라 상인 강방유가 큰 전복을 갖고 와 장한철에게 보여 주며 자랑을 한다. 그 전복은 껍질을 벌려 열었는데, 그 안에 진주 두 개가 있었다. 진주는 오색이 찬란하여 눈이 부셨다. 생긴 모습은 둥글고, 크기가 제비 알 정도였다.
진주 두 개는 크기가 비슷해서 크고 작은 구별이 없었다. 쌍 진주인 셈이다. 정말로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배였다.

작금 상황은 호산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호산도에 제주도에서 나는 전복 감귤이 그 당시 있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전복은 일본과 제주에서만 난다는 통설을 뒤엎은 일이라 할 것이다.

/장영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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