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원본대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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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원본대조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2.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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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추해져야 하는 자연현상에 맞서
신의 영역에 칼질이라도 하여
‘이제 그만!’ 하며 금이라도 긋고 싶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벼움에
씁쓸하면서도 거역하기 힘든
긴 여운을 갖게 시간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수필가) /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화장대 앞 슈틀을 꺼내어 앉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최소한 같이 마주하여 오랜 시간 동안 겪지 않으면 알 길 없는 내면은 모두 배제하고 외양만 하나하나 뜯어본다. 썩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구석이 없다. 뜯어보아 이런데 조합하여 보면 구조도, 배열도 이처럼 개성적인 얼굴도 흔치 않으리라. 
하지만 눈을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시력은 정상이다. 그뿐인가. 세월을 오래 밟아온 연륜이 얹혀있어 그런지 딱 보면 착함표인지 아닌지도 알아낸다. 코도 살짝 납작하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몫이고 호흡하는 데 전혀 지장 없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애들이 뭘 먹었는지 냄새로 구분이 확연할 정도니 이도 문제없다. 
무엇보다 비가 쏟아질 때 납작하다 하여 빗물이 코로 들이칠 리도 없으니 말이다. 입술도 예쁘지만 않을 뿐이지 음식을 먹을 때 흘림을 막아주고, 특이하게 생겨 발음이 부정확한 것도 아니니 이도 기본은 통과된 듯하다. 문제는 보는 사람이 살짝 불편해 할까. 어찌하리.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거울에서 눈을 거두어 동창모임에 가기 위해 화장하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하신 어느 선생님께선 이런 작업을 ‘분탕질’이란 말로 폄하도 하지만 이것 또한 그 어른 생각의 결과다. 나이를 속인다기보단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자신 없어져 가는 나를, 보는 이로 하여금 좀 덜 불편하게 하고 싶어 화장품도 사고, 화장대 앞에 앉아 이렇게 시간도 할애함이 아닌가.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동창 모임이지만 어느 달은 내가, 어느 달은 다른 친구가 참석지 못하여 더러 반년에 한 번 볼 때가 많다. 여인들 모여 앉혀 놓으니 시끌벅적하다. 주위를 살피다 목소리를 한 톤 내리자고 누군가 제의하여 그러는 듯하더니,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보면서 살았어야 그도 좀 오래가지 이내 아까의 그 높이로 다시 돌아왔다. 
그중에 익숙지 않아 본 듯도 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마음은 미안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자주 참석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섞여 말꼬리를 적당히 내리며 물었다. 옆에 앉은 한 친구가 거든다. “00이잖아. 모르겠지? 호호호” 대답을 하는데 주변으로 야릇한 기운이 번지면서 킥킥거린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뜯어고치기로 바뀌어 갔다. ‘그것 봐라. 돈들이니 동창도 잘 몰라 보잖냐.’는 식의 분위기 맞추느라 거드는 품 또한 살짝 오버된 행동이라 웃겼다. 오십 줄을 훌쩍 넘겨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편들은 일정 위치에 있지, 애들은 상아탑이라 말하기엔 빛바랜 지 오래지만 어쨌건 교육비의 마지막 단계에 걸쳐져 있다. 그것만일까. 시간은 팽팽 남아돌지, 가끔씩 ‘난 뭘까?’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들었다 놨다 의심은 가지, 문득 세월 앞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니 발악하듯 나이를 거스르고픈 행위의 발로였을까?
이렇게 시작된 ‘고치기’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일 뿐 너도나도 보톡스를 맞았느니 실리콘을 주입했다느니, 찢었다느니, 앞트기니, 뒤트임이니 별별 방송에서나 듣고 보던 걸 가까이서 확인하며 쉬쉬하다가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이야기는 뭉게구름 피어나듯 허공으로 번졌다. 분위기와 헛도는 내 눈빛은 그 생경스러움에 반짝거리며 사태 확인 차 두리번거렸다.  
어쨌건 주름도 나보다 훨씬 덜해 보였고, 피부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보아서 그런지, 사실이 그런지 다림질해 놓은 것처럼 팽팽해 보였다. 왼쪽에 앉은 친구가 하마 눈을 찌를 것 같은 동작을 취하며 ‘너도 이 눈가 쪽 주름을 이렇게 살짝 좀 당기면 훨씬 예뻐 보이겠다.’고 말한다. 쳐지고 나서 하느니 조금 일찍 서두르면 덜 쳐져 예뻐 보이고 덜 불편하다는 그 친구 나름의 지론이다. 
듣기엔 그럴싸했다. 다만 당장 불편함이 없고 그 부분에 생각이 달라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않을 뿐.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인 듯 꼬리를 확인하기 힘들게 계속되었다. “죽어서 저승에도 가면 요즘은 빨리 일 처리가 안 된다더라. 하도 사람들이 많이 뜯어 고쳐놔서 그 사람이 맞는지 원본이랑 대조해야 되는데 ‘원본대조필’이라는 고무인을 찍는 사람이 너무 바쁘대.” 그 말에 자리한 모든 이의 웃음은 높이로 날아가며 지천명을 훌쩍 넘긴 여인들의 빵빵한 허리통 같은 곡선을 긋는가 싶더니 이내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어 누군가가 또 말한다.
“그래서 요즘은 며느릿감 고를 때도, 고3도 말고 고1 때 사진을 보잔다더라. 졸업반인 고3부터 고치기 시작하면 원판을 몰라서 확인한다는 거지. 다 뜯어고친 후라서 확인 안하고 2세를 낳으면 애미, 애비 안 닮아 그제야 이 검사, 저 검사 받으며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니 확실히 하자는 거지.” 이야기는 엉뚱하듯 하면서도 다들 할 수만 있다면 하겠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추해져야 하는 자연현상에 맞서 신의 영역에 칼질이라도 하여 ‘이제 그만!’ 하며 금이라도 긋고 싶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벼움에 씁쓸하면서도 거역하기 힘든 긴 여운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 나이 즈음에서 재확인되는 ‘예쁨표 현실’에 나는 적이 아니 다분히 자위하듯 안도감을 내쉬었다. ‘계란녀’라거나 ‘V라인’ 운운하는 이색 얼굴용어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이어 칼끝의 묘기로 주먹크기의 계란형 얼굴을 고집하며 뼈를 깎는(?) 생고생은 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이 나이면 미모도 평준화 된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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