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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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9)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2.0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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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 벽에는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0~13번째 벽면이 자리하는데, 가장 북쪽의 10번째 벽에는 총 14장면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장면은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에서 위쪽으로 전개되며, 석씨원류 판화의 순서에 의거 133번째 장면인 관세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청정한 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양지정수(楊枝淨水)에서 146번째 장면인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문병하는 문수문질(文殊問疾) 장면까지 그려졌다. 이들 14장면은 관세음보살과 관련된 양지정수와 증명설주(證明說呪, 140), 보시 또는 공양과 관련된 채화헌불(採花獻佛, 134), 연등불멸(燃燈不滅, 135), 조번공불(造幡供佛, 136), 시의득기(施衣得記, 137), 부처님께서 설법하거나 고난 구제 및 재난을 소멸하는 주문을 알려주는 의구용난(衣救龍難, 138), 설주소재(說呪消灾, 139), 용궁설법(龍宮說法, 141), 천룡운집(天龍雲集, 142), 불찬지장(佛讚地藏, 143), 승광문법(勝光問法, 144), 유마거사 이야기를 다룬 (維摩示疾, 145)과 문수문질(文殊問疾, 146)로 이루어졌다. 
 
연등불이 꺼지지 않다(연등불멸)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홀로 구걸하며 살아가는 난타(難陀)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국왕은 물론 온 나라 사람이 모두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것을 보며,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난하게 태어나 다른 사람들처럼 보시할 수 없는 신세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비록 보잘것없더라도 자신도 남들처럼 부처님께 공양드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구걸하였으나 겨우 돈 1전밖에 얻지 못했다. 그녀는 그 1전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1전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는데 무엇에 쓰려는지 물었다. 난타는 모두가 부처님께 공양하는데 자신은 가난하여 남들처럼 할 수 없지만 작은 등불이라도 부처님께 공양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름집 주인은 그녀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지고 등불을 만들어 부처님이 계신 정사로 가서 공양된 여러 등불들 가운데 놓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드립니다. 이 공덕으로 제가 내세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해주소서.’
그녀는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 예불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이 지나 새벽이 되자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오직 그 등불만은 홀로 타올랐다. 당직이었던 목건련(目犍連)은 등불을 걷어 정리하려다가 그 등불 하나가 여전히 타오르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보니 그 등불은 심지도 닳지 않아서 새로 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밝은 낮에 등불을 켜둘 필요가 없었기에 그것을 꺼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끄려 하였으나 불꽃이 가물거리다가 다시 타올랐다. 그래서 손과 옷자락으로 부채질하였으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때 부처님께서 목건련이 등불을 끄려는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네가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해의 물과 산바람을 가져다 끄려 하여도 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 중생을 두루 건지겠다는 광대한 서원을 한 사람이 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난타가 다시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니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는 내세 백 겁 이내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출가하기를 청하니,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어 비구니가 되었다. 사위국의 백성들은 가난한 여자가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바침으로써 부처가 된다는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존경하는 마음에 난타에게 의복 등 여러 물건을 다투어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이런 난타의 상황을 본 아난과 목건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난타 여인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살았고, 또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고 여러 사람이 공경하고 다투어 공양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가섭불이 계실 때, 어떤 장자의 부인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먼저 한 가난한 여자에게 공양받기를 허락하신 상황이었다. 그런데 장자의 부인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공양을 먼저 받지 않고 거지의 청을 받은 것을 불쾌히 여기며 업신여겼다. 그 뒤로 그 장자의 부인은 언제나 가난한 거지 집에 태어났다. 그러다 진정으로 등불을 공양하며 서원하였기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수기를 받았고 온 나라가 공경하고 우러르고 있는 것이다.”
사위국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막론하여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등불을 준비하여 정사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사람은 너무 많고 등불은 기원정사 사방에 가득하여 마치 별들이 공중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아난은 부처님의 여러 가지 덕행을 찬탄하며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어떤 덕을 쌓았기에 이런 한량없는 등불 공양의 과보를 받느냐고 여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먼 옛날 한 나라에 왕이 부처님을 청하여 석 달 동안 공양하였는데, 아리밀라(阿梨蜜羅)라는 비구가 그 석 달 동안 등을 만들어 공양하기 위해 날마다 성에 들어와 시주를 구하였다. 마침 그 나라의 공주 모니(牟尼)가 그를 눈여겨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그가 만드는 등불 재료를 보시하였다. 아리밀라는 날마다 등불을 켜 공양하고 일체 중생을 두루 제도할 서원을 세웠는데, 정성이 지극하고 독실하여 부처님께서 그에게 정광불이 된다는 수기를 주셨다. 모니 공주도 수기를 받았는데 바로 석가모니불 자신이니, 지금 부처가 된 것이 등불의 과보를 받은 것이라 하셨다. ( 『현우경』  3권  「빈녀난타품」 )
각원사 벽화의 〈연등불멸〉(사진 1)과 석씨원류 판화(사진 2)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왼쪽에는 등을 만드는 장면을 표현하고, 오른쪽 건물에는 중앙에 앉은 부처님을 향해 앉아 수기를 받는 난타 여인과 아난과 목건련의 모습이 그려졌다. 과거 인도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등불과는 다른 형태 - 아마도 그릇에 기름을 넣고 심지를 넣은 –였겠지만 벽화나 판화에서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등불 형태로 묘사되었다. 초파일 연등행사에서 보는 다양한 연등이나 사찰에 걸린 연등을 보며 등불 하나로 부처가 되는 수기를 받은 난타와 석가모니불을 생각하며 서원을 세워보자.

(사진 1) 각원사 10벽의 연등불멸 장면
(사진 1) 각원사 10벽의 연등불멸 장면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연등불멸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연등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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