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윤(閏) 2월의 예수재(豫修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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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 - 윤(閏) 2월의 예수재(豫修齋)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4.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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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山居士

“만일 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긴다면
자기를 악惡에 매어서는 안 되나니
나쁜 짓을 거듭거듭 많이 짓는 자는
행복을 얻기가 쉽지 않다네.
모든 것을 끝장내는 저 죽음에 붙들려
인간의 상태를 버릴 때에는
참으로 무엇이 그 자신의 것이며
그때 그는 무엇을 가져가는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은 여기 이 세상에서
공덕과 죄악 저 둘을 짓나니
이것이 참으로 그 자신의 것이며
그때 그는 이 둘을 가져가도다.
예를 들면 그림자가 그를 따르듯이
그때에 이것이 그를 따라가도다.
그러므로 유익함[善]을 지어야 하나니
이것이 존재들의 미래의 자산이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 모든 존재에게는
공덕이 저 세상에서의 기반이로다.”

『상윳따 니까야』 「사랑하는 자 경」(S3:4)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세존께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업(業, Kamma)에 대한 법문을 하신 뒤 이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초기 경전의 여러 곳에서 세존께서 늘 강조하신 바와 같이 중생들은 업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들의 권속이고, 업이 그들의 의지할 곳입니다.

업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었음’ 때문에 반드시 과보(vipāka)를 가져옵니다. 마치 씨앗을 심으면 그 종자에 고유한 열매가 열리듯이 의도적인 행위는 그 의도한 선 또는 불선의 성질에 따라 각각 고유한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를 업의 법칙(Kamma-niyāma)이라고 합니다.

「업에 대한 작은 분석 경」(M135)에서 세존께서 비록 윤회에서 삼악도, 악처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살생하면 단명하고, 남을 해치면 질병이 많고, 화내고 성내면 용모가 추하고, 질투가 심하면 권세가 없고, 보시하지 않으면 가난하게 되고, 완고하고 오만하면 비천해지고, 착하고 건전한 업을 모르면 우둔한 자로 태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고 설하셨습니다.
선한 업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를 둘러싼 환경 역시 훌륭합니다. 중생들의 업이 좋고 나쁨은 그들의 근본 마음과 연관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등이 과도하다면 업은 자연히 좋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게 됩니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업은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금생에 받는 업, 다음 생에 받는 업, 받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는 업 등으로 구분합니다.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되지 않는 한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언젠가는 받아야 합니다.
재가자의 삶은 오염되었기에 업의 길[業道, kamma-patha]을 따라 죽음을 향해 걸어야 합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인과법칙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삶의 길은 다르지만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마치 나무가 그 모든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이생에서 누리던 갖가지 기쁨과 슬픔을 다 버리고 갑니다.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이미 잘못 산 것입니다.
죽음의 마음에 염라대왕의 모습이 나타나고 다음에 몸을 받을 곳이 인간계보다 낮은 삼악도일 것이라는 표상이 나타난다면 금생에서 지혜의 광명을 찾기 위한 팔정도를 닦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생에 지옥이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과거에 큰 공덕을 지었다는 것인데, 금생에 지계와 보시의 공덕을 쌓지 못했다면 내생에는 삼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올해 춘분 다음날인 3월22일 윤閏 2월이 시작돼 4월20일 곡우를 앞두고 끝납니다. 옛 사람들은 윤달은 공空 달이므로 좋은 일에는 흉凶이 따르고 나쁜 일에는 길吉한다는 속설을 믿고 결혼식을 기피하거나 수의 마련, 묘지 이장 등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선 이런 세속적인 일을 실행하거나 윤달 피행을 모두 업이라 일컫습니다. 오히려 불자들은 세속의 삶에서 쉽게 죄업에 물든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재齋를 올립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팔관재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고려 광종 때 수원의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봉행한 물이나 육지에서 방황하는 원혼과 아귀를 천도하는 수륙재가 그러합니다.

특히 생전예수재는 고려 이후부터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태음력으로 윤달이 드는 해에는 전국의 교구본사와 말사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거행하여 불자들의 여러 가지 복덕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행사로 뿌리내려 왔습니다.

생전예수재는 말 그대로 ‘생전生前에 미리[豫] 닦는[修] 재齋’를 뜻하는데, ‘자신의 사후를 위해 살아 있을 때 치르는 의례’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계종 제23교구본사 한라산 관음사(주지 무소 허운 스님)는 4월9일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에서 생전예수재를 봉행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가을은 잠든 영혼을 깨우는 계절이라 말하지만 윤 2월은 사부대중이 죄업을 씻는 계절이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재를 참여하여 자신의 업보를 녹여내고 죽음을 두렵게 여기지 않아야 진정한 청신사, 청신녀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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