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찾아봄
상태바
도댓불 - 찾아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03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절의 초입, 새벽 공기가 차다. 쏟아진 봄 햇살로 여기저기 고개 든 고사리 생각에 몸과 마음이 벌써 안달이다. 서둘러 고사리밭이라 말하는 곳으로 향했다.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이다. 너무 일찍 나섰나 생각했는데 웬걸, 목적지에 도착하여 도로를 조금 빗겨서니 새벽을 가르며 달려와 주차한 차량으로 즐비하다. 고사리를 찾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주차한 차량은 많은데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어둑새벽, 어둠을 휘휘 가르며 너른 아산을 탐색하러 벌써 들판을 헤매는 중인가 보다.
고사리 꺾을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차 한 잔까지 마시니 어둠이 걷혔다. 목장 안길, 시멘트 포장길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걸까. 사물을 분간하며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시야의 한계가 너무 좁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했다. 도로 오른쪽을 쳐다보면 왼쪽에 있는 것들을 놓치는 것 같다. 다시 그쪽을 바라보면 이내 반대편 것들을 자꾸 놓치는 것만 같아, 눈과 마음은 한없이 분주한데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다. 
고사리 꺾으러 나선 인파로 이맘때면 야산은 항상 붐빈다. 마침 휴일인 데다 엊그제 비가 내려줘서 그럴까. 고사리 하나에 사람 하나더라는 말이 딱 맞다. 들판이 넓다지만 여기저기 사람도 많다. 밟았던 길 가고, 또 다른 이가 다시 거쳐서 밟고 가기를 반복했는지 고사리가 안 보인다.
여태 두어 줌도 못 꺾어 다른 쪽으로 옮길까 생각하며 등성이 풀숲, 작년 고사리 이운 흔적 따라 후미지고 경사진 곳을 가로질러 올라갔다. 소나무와 덤불로 덮인 한 어귀. 그 짧은 거리의 이동에도 솔가지는 손톱을 세우고, 무리 진 찔레며 억새 숨죽인 곳에선 짊어진 가방과 발길 따라 바짓단을 징긋징긋 잡아 비트느라 저들도 바쁘다. 
야산 속, 많은 발길이 오고 갔겠지만, 눈에 안 밟혔나 보다. 통통한 것들이 모도록이 모여 키 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거실 크기 남짓, 사람 손이 탄 적 없는 고사리밭이다. 오호~ 횡재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눈은 다음 꺾을 고사리 찜하느라 분주하다. 행여 누가 다니다 여기로 올까 봐 숨도 크게 못 쉬겠다. 꺾은 것을 가방에 담을 틈도 없이 움켜쥐었던 고사리는 아귀에 넘치는 바람에, 옆에 놔두고 정신없이 다시 꺾었다. 
두어 시간 심심하게 헤매다 이곳에 들어서 꺾은 고사리로 가방이 제법 빵빵 하다. 꺾을 때 느끼는 재미와 꺾고 난 후 마음 가득 넉넉한 함으로 혼자 연신 싱글벙글이다. 인정과 여유는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새벽을 가르며 정신없이 오느라, 여태 눈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찔레꽃과도 눈 맞춤했다. 고사리 찾아 헤맬 적에는 모자며 가방 여기저기가 가시에 걸리는 바람에 짜증 나던 찔레가 아닌가. 가만히 보니 하얀 찔레꽃이 녹색 가지와 어우러지며 야산의 한 허리가 휠 듯하다. 곱다. 생각지 않게 얻은 즐거움과 소소한 기쁨이 계절 안으로 깊이 들어온다. 
고사리 꺾으러 나선 길에서 밋밋했던 시간 위에 떨어진 횡재처럼, 삶에도 때때로 이런 행복이 그득 묻어날 때가 있다. 지치고 힘든 게 삶인가 생각하다 보면, 어디선가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더러 성취감에 도취 되어 날아갈 것 같은 시간이 마련되기도 한다. 더러 무심했던 곳에서는 생각지 않게 텐션이 빵하고 터질 때도 있다. 생각지 않아서 기쁨은 더 크다. 
시간 내 찾아보면 삶에 봄볕 같은 날들도 꽤 있었을 듯하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잊고 또 서두느라 놓쳤을 뿐. 아까 손 타지 않은 고사리밭에서 느끼는 감정처럼 세월에 놓치고 흘린 줄 모르게 흘린 소소한 기쁨을 찾아봐야겠다. 세월을 밟는 동안 묻어 두고 잊혔던 기쁨들이 곳곳에 왁자하지 않을까. 비 오고 나면 계절의 걸음도 한층 빨라질 것이다. 마음의 메모장에 오늘은 이렇게 써야지. 이 봄, 내 삶의 봄날을 다시 찾아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