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처럼- 사무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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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처럼- 사무량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0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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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도 마음공부는 불변
자애, 연민, 기쁨, 평온이 출발점
세월호 9주기의 아픔에 공감
우리 모두 좀 더 따뜻해졌으면

연초록 파스텔톤의 산색이 평온하다. 새들의 목청은 높고 청량하다. 이 평화로운 봄날, 경주를 다녀왔다. 문화로 국력을 자랑하던 시대에 백제는 미륵사를, 신라는 황룡사를 지었다.

지금은 세월의 허망함을 담아 빈터로 남았다. 새벽녘 스님 100여 명이 황룡사 9층탑이 섰던 빈자리에서 예불을 올리고 좌선을 하였다. 어스름한 아침 동쪽 하늘에서 붉은 해가 솟는다. 삭발한 머리와 적갈색의 가사, 회색 장삼은 주초석만 남은 절터에도 어우러진다. 아마 천 년 전에도 수행자들의 마음엔 따뜻한 사랑과 어려움을 돕고자 하는 연민과 더불어 기뻐함과 평온함이 가득했을 것이리라.

경주보문단지에는 역사 속 유물인 황룡사 구층탑 양식의 중도탑을 현대 과학기술과 건축공법으로 재해석하여 지은 황룡원이 자리해 있다. 한눈에도 품격을 갖춘 이 건물은 다양한 명상과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연수원이다.

황룡원에서 KAIST명상과학연구소장인 미산 스님은 명상과 과학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챗GPT4가 이용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훌륭한 답변도 있지만 거짓말도 진짜인 것처럼 답한다는 것. 무려 100조 개의 파라미타가 장착된 챗GPT5가 개봉시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현실과 가상이 모호해지는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인간이 따라 잡을 수 없는 혁명의 시대가 곧 현실로 다가온다.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AI시대도 준비없이 맞닥뜨린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분야의 몇몇 선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시간조절을 한다지만, 자본 앞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AI에게 절제의 지혜와 자비를 갖추도록 하는 것을 의무로 강제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수행자들이 마음공부 전에 사무량심(四無量心. 자애 연민 기쁨 평온)을 장착하듯이. 이 분야 과학자들이 100조 개의 파라미타에 기본 사양으로 사무량심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사무량심은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나오는 마음이다. 초기불교의 수행체계에 37가지의 단계가 있다. 37가지 수행을 하기 전에 반드시 사무량심을 이해하고, 깊이 새기고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수행하는 목적을 잊고 자아에 도취하기 쉽다. 사무량심을 닦으면 마음을 조절하고 복덕을 늘일 수 있으며, 결국에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  이 글은 중앙일보  ‘삶의 향기’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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