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정법구주(正法久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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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 - 정법구주(正法久住)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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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인 항산 김승석

우리나라와 인도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해를 기원전 544년으로 보고 올해 2023년은 불기 2567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이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설법하신 것, 그리고 「법의 상속자 경」(M3)에서는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라고 고구정녕 하게 말씀하신 것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전법과 교화를 하신 45년간의 부처님 일대기를 “법귀의 ·법등명法歸依·法燈明”의 여섯 글자로 압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력 초파일이 있는 5월은 ‘법의 달’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라고 천명하신 그 법(dhamma)이 오늘까지 그대로 변형되지 않고 보전되고 있는지를 새삼 반조해봅니다. 
최근에 이르러 한국불교에는 불광佛光이 없다는 말이 크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느 불교시민단체는 “현재 불교 인구 감소, 출가자 감소, 소통의 부재 등에서 나타난 불교 공동체 위기는 절망적이다.”라고 하면서 불교가 사회의 지남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출가자가 줄어든다는 건 전국 각지에 있는 사찰을 관리할 젊은 스님이 사라지고 스님의 고령화가 한층 더 심화된다는 뜻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스님의 81%가 50대 이상이고 20대는 1%뿐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건대 ‘새로운 절을 지을 돈이 있어도 지킬 스님이 없어 못 짓는다.’는 얘기가 허투루 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법 수행이 쇠퇴하고, 일부 지도층 승려들의 은隱 처자 의혹, 음주와 폭행, 도박 등 범계행위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 종단의 사회적 신뢰를 붕괴시키는 지경에 이르자 불자들이 절을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사회 환경에다 코로나 역병이 창궐하고 기상이변이 빈번한 까닭에 불교에서 말하는 말법末法 사상이 그럴듯하게 먹혀들고 있습니다. 
<대방등 대집경>에 따르면 불멸 후 천년 동안을 정법正法시대라 하여 세존의 가르침이 온전하게 계승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도와 과를 증득하는 이가 많으나, 이후 천년은 상법像法 시대가 되어 교학과 수행은 있지만 그 결과 깨달음을 증득하는 이가 드물고, 그 다음 천년은 수행도 깨달음도 없고 껍데기만 있는 말법시대가 지속된다고 합니다. 

말법사상에 기초를 둔 정토사상은 자력으로 깨달음을 이루어야 하는 선禪이나 보살도菩薩道는 난행도難行道에 속하는 것으로 말법의 중생이 그것을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주장을 편 뒤,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쉽게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염불수행을 하라고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 지눌知訥 선사는 『권수정혜결사문 勸修定慧結社文』에서 “시대는 비록 변할지라도 심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거늘 법과 도를 흥하고 쇠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대승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의 소견이다.”라고 역설하였는데,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부처님의 원음이 실려 있는 초기경전의 어느 곳에도 ‘때가 되면 말법 시대가 온다.’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대승경전의 일부에서 이런 구절이 있기는 하나 이는 비(非)불설이므로 경청할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이 쟁점과 관련하여, 세존과 제자들의 문답이 실려 있는  「유사정법類似正法 경」(S16:13)을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마하깟사빠(가섭) 존자는 세존께 “예전과 달리 학습계목은 더 많아졌지만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지금은 구경의 지혜(깨달음)에 안주하는 비구들은 더 적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깟사빠여, 중생들이 하열해지고 정법이 사라질 때에는 학습계목은 더 많아졌지만 구경의 지혜에 안주하는 비구들은 더 적다.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은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면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다섯 가지 유해한 현상, 즉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불·법·승 3보와 도 닦음과 삼매를 존중하지 않으며 머물 때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와 달리,  「바라문경」 (S47:25)에서는 어떤 바라문 청신사가 세존께 “무슨 원인과 조건 때문에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에 정법이 오래 머뭅니까?”라고 여쭙자 세존께서는 “네 가지(신·수·심·법)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정법이 오래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음챙김(正念, sati)은 문지기가 되어서 불선법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며 번뇌의 일어남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하여 해탈·열반으로 인도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금생에 부처와 조사를 뵙고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 다 어렵습니다. 믿음은 불법의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온갖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법의 바다를 순항케 하는 배가 아닐까요.  
가섭 존자는 미륵하생의 증명법사로서 석가세존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물려받아 28조 달마에게 전해졌고, 이 법이 6조 혜능을 거쳐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으로 피어나 선종5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역사입니다. 
한라산 영실 존자암은 <법주기>에 나오는 16나한 중 발타라跋陀羅 존자가 머물며 정법을 수호한 신령스런 곳입니다. 그 정신을 오롯이 승계하고자 33년 전 사부대중의 중지를 모아 1989년 9월 제주불교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저는 본지의 편집인으로 지난 30년 동안 진리의 법등을 밝히는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하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법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저의 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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