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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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1)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9)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2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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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의 맨 오른쪽 벽은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0번째 벽이다. 이 벽에는 총 14장면의 이야기가 그려졌는데 다섯 단에 세 열로 나누어 배치되었다. 정 중앙에는 140번째 장면인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위해 진언을 설하는 증명설주(證明說呪)가 자리하고 있다. 

진언을 설하여 증명하다(證明說呪)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의 화려하게 장엄된 궁전의 사자좌에 앉아 계실 때, 관세음보살이 신통력으로 광명을 방출하여 세계를 비추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에게 대비심다라니가 있어 지금 그것을 설하려고 합니다. 모든 중생이 안락함을 얻을 수 있는 다라니로, 일체의 병을 없애서 수명을 늘리고 많은 재물을 얻게 하고 모든 악업과 무거운 죄를 멸하고 멀리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위함입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 자비와 애민으로 이를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지금이 그것을 설할 때이니 속히 설하라고 하셨다. 이에 관세음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약 사부대중 가운데 이 주문을 외우고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비심을 일으켜 먼저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저의 이름을 부른 다음에 이 신주를 외어야 합니다. 이 주문은 능히 몸 안의 무거운 죄업을 제거하고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중생들 중 대비신주를 외우고 간직했는데 현재의 생에서 구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비심다라니를 송지하였다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관세음보살이 대중 앞에 합장하고 자리 잡으니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한 마음이 일어났고, 관세음보살은 곧 신묘장구다라니(神妙章句陀羅尼)를 설하였다.
이 다라니가 설하여지자 하늘에서는 보배로운 꽃비가 내렸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기쁨에 휩싸였고, 천마와 외도들은 공포에 싸여 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다라니를 들은 중생은 모두 과위를 얻었고, 많은 중생들은 저절로 보리심이 일어났다.
        
삼보에 귀의하고, 관세음보살께 귀의한다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알약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를 세 번 암송하고 마치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는 불교 의례에서 빠짐없이 독송되는 천수경의 일부이다. 여기서 약바로기제새바라가 산스크리트어의 아왈로끼떼슈와라, 즉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을 음역한 것이다. 이 다라니를 번역하지 않고 주문처럼 원문대로 독송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깊고 신묘하여 번역하면 원래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이다. 관세음보살을 찬탄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부분에 관세음보살의 열두 가지 호칭을 나열하는데, 그 중 닐라칸타(푸른 목을 가진 자), 바라하므카(멧돼지 얼굴을 가진 자), 싱하므카(사자 얼굴을 가진 자)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과는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힌두교에서 중시하는 신인 쉬바와 비슈누의 모습과 일치한다. 게다가 연꽃, 법륜, 소라, 곤봉을 들고 있는 것도 비슈누가 들고 있는 지물과 일치하며 호랑이 가죽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쉬바의 모습과 같다. 이처럼 관세음보살의 모습에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마도 굽타시대 이래 인도에 힌두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불교 사원이 힌두교 사원으로 바뀌게 되고, 일부 불, 보살의 모습과 힌두교 신의 모습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표현되는 현상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한국에 통용되는 천수경이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을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경은 658년 가범달마가 번역하였다. 번역된 658년은 7세기 중반으로 인도에서는 이미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득세했던 시기였다. 이를 감안하면 이와 같은 혼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관세음보살은 근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변화신을 지닌 분으로 인도인들에게 그들에게 익숙한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타락가산과 극락은 다른 세계지만 중생들의 고통과 두려움의 소리를 듣고 이를 구제하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염원이 구현된 세계는 같은 모습이다. 어떤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세계로 아미타부처님이 주재하시고 좌우 보처보살 중 한 분이 관세음보살이므로 관세음보살이 심묘장구대다리니에서 구현하는 세계는 극락세계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증명설주
(사진 1) 석씨원류 판화 증명설주

이 관세음보살이 다라니를 설하는 장면은 석씨원류의 판화(사진 1)에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중앙에 솟아오른 바위산에 지어진 기와집 중앙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는 보타락가산이 인도의 남동쪽 해안가에 있다고 해서 바다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삼장법사의 모델이 된 당나라 현장이 지은 『대당서역기』에는 보타락가산이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근처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속초의 낙산사나 티벳의 포탈라궁의 이름도 이 보타락가산에서 비롯되었다. 

(사진 2) 각원사 대웅전에 그려진 증명설주 벽화
(사진 2) 각원사 대웅전에 그려진 증명설주 벽화

각원사 벽화(사진 2)에서도 마찬가지로 파도에 둘러싸인 보타락가산을 묘사했는데, 부처님의 가사와 관세음보살의 보관과 옷, 보타락가산의 궁전을 상징하는 건물에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이 증명설주 장면은 석씨원류의 부처님 관련 판화 26장면이 벽화로 그려진 통도사 영산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방 네 벽 중 이 장면은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동벽의 오른쪽 상벽에 자리하는데, 관세음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중생 구제를 청하는 장면이어서 특별히 불단이 있는 동벽에 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3) 통도사 영산전 동벽 증명설주 벽화
(사진 3) 통도사 영산전 동벽 증명설주 벽화

그림(사진 3)은 판화나 각원사 벽화와는 달리 소나무와 바위가 그려진 배경에 화려한 연화좌에 앉은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청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화면이 작아서 바다를 상징하는 파도나 궁전의 모습을 제외하고 설주를 청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60년 넘게 빠짐없이 아침 예불을 하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천수경을 독송하면 갈 때 고통 없이 편하게 갈 수 있다고 자주 천수경에 대해 말씀하시고, 사경도 하시곤 했다. 듣는 자식의 입장에선 가신다는 말씀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갑자기 기력이 쇠해지셔서 병원에 가신 지 나흘 만에 돌아가셨는데, 자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손발을 주무르고 천수경을 틀어드리는 것밖엔 없었다. 돌아가신 모습이 모든 것을 놓아버린 편안한 모습이어서 당신께서 늘 말씀하셨던 대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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