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3] - 을묘왜변 제주대첩과 건공장군 김성조
상태바
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3] - 을묘왜변 제주대첩과 건공장군 김성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31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 고내 오름에 불이 붙었어요!”
소년은 깜짝 놀라 배틀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급히 찾았다. 고내오름은 소년이 사는 엄쟁이에서 서남쪽에 있는 오름이었다. 고내오름 봉우리에서 누가 불을 붙였는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바닷가의 엉장(절벽) 위에 있는 남두연대에서도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이웃마을에 있는 수산봉수에서도 불꽃이 피어올랐다.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불꽃은 아주 아름다웠다. 
소년은 더럭 겁이 났다. ‘왜구가 쳐들어오는 것일까?’ 
언젠가 아버지가 성을 쌓으러 가면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바닷가에는 돌로 만든 환해장성이 있었다. 센 바람에 성이 무너지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가 무너진 곳에 돌을 쌓아올리곤 했다.
“우리나라 동쪽에 왜구가 사는 나라가 있는데, 큰 바람이 많이 불고 땅이 흔들려서 살기가 어렵대. 그래서 농사가 잘 안되니까 우리나라나 중국으로 도둑질을 하러 다녀.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작아서 왜구라고 부른단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네. 그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오면 안되겠다. 어떻게 막아내지요?”
“사람들이 고내오름과 남두연대에서 지키다가 왜구가 다가오면 불이나 연기를 피워서 알려주지.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연기나 불을 보고 숨으러 가고, 군인들이 와서 물리친단다.”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중-


제주의 어린 소년에게 왜구와의 접촉은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성장하는 동안 제주 해안의 봉수와 연대가 바다 건너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는 왜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 대해 이해하였을 것이다.

“소년의 나이가 열두 살이 넘자 아버지는 소년에게 자주 말테우리 일을 시켰다. 말을 좋아하는 소년은 동네 말을 몰고 산으로 올라갔다. 말을 먹이러 산에 올라가면 이웃마을 아이들도 말을 몰고 올라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누가 말을 잘 타나 내기를 하곤 했다. 때로는 마을 대항으로 말타기 시합을 했고 소년은 언제나 으뜸이었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말테우리 일을 하면서 말의 습성을 이해하고 말을 다스리는 일에 익숙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사장밭(활터)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활을 들고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다가 동그라미가 그려진 과녁에 맞았다.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의 팔뚝은 굵었고, 눈은 매서웠다(하략).”

소년은 활쏘기가 배우고 싶어졌고, 활터인 사장밭까지 찾아가서 시위에 쓰는 재료를 물어보고 왕대나무를 잘라다가 활을 만들고 활쏘기 놀이를 하면서 활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소년이 을묘왜변을 격파하고 승첩의 주인공이 될 자질을 어릴 적부터 충분히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이 이야기는 제주사람 건공장군 김성조에 대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동화책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이다.

전쟁과 영웅은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특히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에 어려운 일을 해내기에 영웅에 대한 이야기와 존경은 시대를 불문하고 회자되어져왔다. 특히 영웅은 전쟁과 같은 난세에 많이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대표적으로 임진왜란과 충무공 이순신이 영웅담이 오늘날까지 회자되어져 오고 있다. 

건공장군 김성조 묘역-제주 mbc,  『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중 캡쳐
건공장군 김성조 묘역-제주 mbc, 『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중 캡쳐

을묘왜변 제주대첩에서도 김수문 목사를 비롯하여 정로위 김직손, 갑사 김성조, 이희준, 보인 문시봉, 정병 김몽근 등의 인물에 대한 영웅담이 존재한다. 이중 중앙 조정에 장계를 올렸던 김수문 목사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여러 기록에서 종종 다루어졌다. 그러나 제주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그나마 제주사람 김성조와 그의 아들 김용호에 대한 이야기가 김석익의  「탐라인물고(심재집 권 2 수록)」  등에 소략하게 남아있다. 
“김성조는 본관이 나주다. 어려서부터 용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고, 말타기와 할쏘기를 잘했다. 집이 본래 가난하여 제주 본영 지인(知印)에 소속되었다. 명종 을묘년(명종 10년, 1555년) 여름에 왜적 80여척이 호남의 장흥, 강진 등 여덟 진(鎭)을 연이어 함락하였고, 인하여 화북포를 침범하여 제주성을 3일 동안 포위했다. 목사 김수문과 판관 이선원 등이 왜적들을 힘써 막았다. 김성조가 재주와 용기로써 군대에 응모하여 후군 장수를 맡아 몸이 가볍고 날랜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남수구에서 대파하였는데, 죽이고 포획함이 매우 많았다. 임금이 교서를 내려 표창하여 김수문 이하에게는 작위를 높여주고, 김성조에게는 건공장군(建功將軍)을 상 주었다. 김용호는 당시 왜변에 아버지를 따라 적을 토벌하여 공이 있다 하여 방답첨사(防踏僉使)에 제수하였다.”

이외에도 1954년 담수계가 편찬한  『증보탐라지』  등에도 김성조의 말과 활에 대한 남다른 재능과 용맹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김성조 용감하기가 남달리 뛰어나고, 말 타고 활쏘기를 잘 하였다. 명종 때에 왜변을 당하여 후군의 장수로서 주성 남수구에서 적을 격파하고 건공장군의 품계를 받았다.”

박재형 작가의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동화책 표지
박재형 작가의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동화책 표지

이런 작은 기록들이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을묘왜변 제주대첩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왜구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건공장군 김성조를 통하여 제주사람의 기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였던 제주의 역사 속 인물들이 제주와 제주백성들을 위해 싸웠던 일들에 대해 그리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을묘왜변 제주대첩과 제주사람 건공장군 김성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꺼내본다.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회자되면서 제주사람들의 기백에 대한 이야기가 쌓여나가길 바래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