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 나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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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나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3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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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각(전문포교사)
일심각(전문포교사)

데~ 에 엥  뎅~ ~ ~
드디어 포교사 과정을 마치고 행자 생활에 돌입했다. 새벽 4시, 범종 소리를 들으며 나의 일과는 시작된다. 제일 먼저 주전자를 들고 부처님 전에 바칠 물을 뜨러 간다. 공양 간을 나서서 마당을 건너며 법당 쪽을 한번 건네다 본다. 봉창 문이 환하다. 캄캄한 하늘에 별빛이 새롭다. 부처님 전에 촛불 밝히고 향을 피운 후 마음을 모아 삼배를 올린다. 항상 미소 띤 듯 근엄한 표정에 가끔은 걱정스런 얼굴이시다. ‘오늘은 산신 기도 날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 같다. 포교사 공부를 하고도 그럴만한 소명을 행하지 못한 나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내리신 것이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을 지망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국립대는 경쟁이 심하여 사립대를 알아보니 등록금만 수백만 원이다. 은근히 아까운 생각이 들어 등록금으로 모아둔 돈을 싸 들고 인도 배낭 여행길에 올랐다. 8년 전에는 들르지 못했던 고아와 조드푸르에 있는 블루시티를 포함하여 남인도 첸나이까지 한 달간의 여정이다. 16kg이 조금 넘는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다가 한 달 만에 귀국하니 양쪽 어깨의 통증이 심하다.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지 거의 한 달이 될 즈음 절친한 보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공양주 노보살님이 동안거 결제 때부터 이제껏 쉬지를 못하신다.”고 누군가 대신해 주지 않으면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급한 상황에 아들과 약속한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바로 산사에 올랐다. 정신없이 하루 일과를 소화하며 문득 ‘내가 이러려고 그동안 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평생 요리를 했고, 이 자리에 오려고 포교사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하는 공양간의 일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나의 진언은 ‘나는 할 수 있다’이다.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언은 결국 ‘그런데 노보살님이 가시면 난 어떡하지’로 끝난다. 이제 내일이면 보름간의 휴가를 마치고 노보살님이 돌아오신다. “어휴~!” 그동안 무사히 공양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보살님들 덕분이다. 필요할 때마다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님들을 통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해 주신다. 청양고추를 넉넉히 넣고 두부찌개를 끓이는 것을 보고 보현행 보살님이 “스님들은 매운 것을 안 드신다.”고 알려 주신다. 장독대에 간장을 퍼다 다려주시는 법당 노보살님은 어릴 적 기억 속의 외할머니다. 간장 달이는 냄새를 맡으며 내 마음은 어릴 적 마당에서 뛰놀던 고향으로 달려간다. 공양만 마치면 넓은 사찰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궂은일을 말없이 하시는 우리 처사님~! 은혜로 깨달음을 얻으신다는 보살님은 꼼꼼히 전 부치는 모습이 인자한 시어머니 같다. 은오화 보살님은 고사리도 참 잘 볶으신다. 무문관 스님들의 반찬을 임금님 수라상 진상하듯 정성스레 담는 윤채 보살님은 요리 삼매에 빠진 나에게 “무문관 밥 안쳐야 하지 않아요?”라고 귀띔도 해 주신다. 이 분들이 안계셨으면 내가 어떻게 시간 맞춰 스님들께 공양을 올릴 수 있었을까. 매일매일 곁에서 소리 없이 도와주시는 보살들이 나에게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다. 오늘도 관세음보살님들 덕분에 스님들께 정성껏 준비한 공양을 올릴 수 있었다. 참 감사하다. 오, 나의 관세음보살님~~~!

조용한 사찰
마당 한구석
약수물 받는 커다란 
돌 웅덩이 

약수는 마르고
고인 빗물에
올챙이 수십마리
꾸물거린다

상단에 올렸던 물
부으며
부처님 물 먹고
잘자라거라~
사ㆍ랑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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