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따 경 (AN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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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따 경 (AN5:30)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1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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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세존께서는 시자인 나기따 존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기따여, 나는 명성을 쫓지 않고, 명성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기따여, 나는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뜻대로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다. ”

“나기따여, 이러한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뜻대로 얻을 수 없고 힘들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고 어려움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사람은 저 몸의 불결함에 바탕을 둔 즐거움과 잠의 즐거움과 이득과 존경과 명성의 즐거움을 즐기면 된다.”

“나기따여,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자는 대소변을 본다, 이것은 그 결과이다.”

“나기따여,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변하고 바뀌는 성질이 있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이것은 그것의 결과이다.”

“나기따여, 부정의 표상[不淨相]에 몰두하여 지내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표상에 대해 혐오스러움이 확립된다. 이것은 그것의 결과이다.”

“나기따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에서 무상을 관찰하며 머무는 자에게는 감각접촉에 대해 혐오스러움이 확립된다. 이것은 그것의 결과이다.”

“나기따여,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머무는 자에게는 취착에 대해 혐오스러움이 확립된다. 이것은 그것의 결과이다.”



【해설】

·불교에서는 욕심이 적은 것[所欲]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 그리고 숲속 등 한적한 곳에 머물며 명상하는 것[閑居]을 성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성(德性)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세속적 욕구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는 범부(凡夫) 중생들은 성자들의 행법을 지킬 수 없으므로 감각적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자들은 수행을 통해 출리(出離, 욕망에서 벗어남)의 즐거움과 떨쳐버림(탐욕의 소멸)의 즐거움과 (삼매의) 고요함의 즐거움과 (사성제) 깨달음의 즐거움을 뜻대로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본경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을 외부의 대상 또는 사물에 묶어놓는 족쇄는 바로 욕망, 즉 즐거움을 추구하는 탐욕입니다. 즉 외부세계가 인간의 족쇄도 아니고 인간이 외부세계에 대해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자아관념,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에 뭔가를 바람이 없이 구하며, 가져도 교만하지 않고, 알아도 겸손합니다. 홀로 살면서 방일하지 않습니다.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자입니다.

·반면에 범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또한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갖고 있어서 탐욕으로 잘못을 범하고, 가지면 가질수록 교만하고, 알면 알만큼 자아가 강해져 갑옷 같은 자아로 무장하고 상대방을 억누르거나 무시합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염라대왕을 만납니다. 티베트의 옛 고승들은 “염라대왕을 만나면 이미 잘못 산 것이다.”라고 경책한 바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가 아무리 삼매 수행을 하더라도 성자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몸에 대한 부정관 명상, 몸과 마음에 대한 무상관 명상, 자애명상 등을 행하면 비록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는 없지만 불환과를 증득하여 정거천에 왕생할 수 있다고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외동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 두 가지 명상법을 실천하라고 교계하셨습니다. ①“라훌라야, 부정하다고 인식하는[不淨想]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어떤 탐욕이라고 다 제거될 것이다.” ②“라훌라야, 무상을 인식하는[無常想]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나[我]라는 자만은 모두 제거될 것이다.”

·사람의 몸은 300개가 넘는 뼈의 무더기인데 180개의 관절로 연결되어 있고, 900개의 힘줄로 묶여 있고, 900개의 살집이 붙어 있고, 축축한 살갗으로 싸여있고, 표피로 덮여있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마치 기름단지처럼 아래위에서 불순물이 배출되고, 세균의 무더기가 거주하는 곳이고, 모든 병의 고향이고, 고통스런 현상들의 토대이고, 아물지 않은 고질적인 종기처럼 아홉 개의 구멍으로부터 끊임없이 부정한 것들이 흘러나옵니다. 비록 양치하고 세수하고 얼굴 화장하고 목욕하고 비단옷으로 치장하더라도 이 몸은 더럽고 악취가 나고 넌더리나고 혐오스러운 것이 그 특징입니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수행자는 더러운 몸이 살아있든 죽었든 아름다움이라고는 없는 그 본성을 보고 알아서 그곳에서 표상을 취하여 본삼매를 얻어 출리와 탐욕의 소멸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잠시 무상함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른 일들에 휘말리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새벽에 무상을 관하지 아니하면 한낮에는 벌써 온갖 욕심과 망상에 젖어버리게 됩니다. 무상관 수행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열반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상태입니다. 세존께서는 어리석음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조건과 원인에 의해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한 연기(緣起)명상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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