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 스님의 일상 속 행복찾기 - 텃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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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스님의 일상 속 행복찾기 - 텃밭 가꾸기
  • 남정 스님
  • 승인 2016.03.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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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봄이 일찍 시작되는 곳 제주.

봄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제주에 와 새로이 시작된 농사일 때문이다. 사실 농사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텃밭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규모이지만 초보 농부는 거의 모든 시간을 매달리다시피 해야 여름, 가을동안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이 작은 텃밭에서 나오는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길러 먹는 그 재미에 부지런을 떠는 것 같다.



햇살이 따스해 오늘은 텃밭 봄 준비를 하기로 했다. 기온이 따스한 제주는 겨울에도 잡초가 자라 아직 못 벗긴 비닐을 벗기고 겨울동안 잘 숙성된 퇴비를 밭에 뿌렸다. 작년 일 년 동안 마당에서 나온 잔디를 발효시킨 퇴비를 퍼 나르자니 온 도량에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른 곳에서 나는 냄새라면 질색을 하겠지만 밭에 뿌리는 퇴비는 왠지 구수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잡초투성이 땅을 작년에 일구어 농사를 지었더니 올핸 제법 밭 모양이 난다.



스님들은 강원 사집반(승가대학 2학년)이 되면 밭농사 소임을 맞게 된다. 백 명이 넘는 대중이 일 년 동안 먹을 밭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을 책임지는 것이다. 아무리 농사를 모르는 스님도 이 일 년이 지나면 베테랑 농사꾼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하는 승가대학 살림인지라 사집반 소임의 무게는 막중하다. 처음엔 잡초와 채소를 구분하지 못해 작물을 뽑기가 일쑤였고 감자눈을 땅으로 가게 심어 온 밭을 다시 심기도 했다. 그렇게 기른 작물이 첫 수확을 하는 날은 온 대중스님들이 함께 기뻐하는 날이기도 하다. 사집이 지난 후론 땅만 보이면 뭔가를 심고 싶어진다. 조금만 땀 흘리고 정성을 들이면 싹이 트고 열매가 열리는 그 모습이 너무 신비롭다. 농사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흙을 만지고 그 냄새를 맡고 느끼는 그 시간이 그저 좋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시기를 놓치거나 게으르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기에 늘 부지런해야 하고 마음을 내어 움직여야 하기에 우리의 수행과 다르지 않아 더욱 좋다.



텃밭 정리가 끝나니 이젠 정말 봄인 것 같다. 밭일 마치고 마당 한켠에 피어 있는 청매화 꽃을 띄워 매화차 한모금 머금으니 지금 여기가 극락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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