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법륜 경 (SN 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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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 경 (SN 56:1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5.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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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 <383>

《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 

【해설】

본경은 팔정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경입니다. 성스러운 팔정도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인 초전법륜경의 핵심이며「대반열반경」의 마지막 설법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세존께서 열반하기 전, 세존의 막내 제자인‘수밧다’에게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불교교단에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바라나시’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땅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조띠빨라’바라문이었을 때 깟사빠(가섭) 부처님 아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아 수행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다섯 비구는 세존이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고행을 하실 때부터 가까이서 따라다니던 석가족 출신의 바라문 수행자들로서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첫 출가제자가된‘안냐꼰단냐’,‘밧디야’,‘왑빠’,‘마하나마’,‘앗사지’등을 말합니다.  
도(道)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길을 뜻하는 도(magga)가 그 하나이고, 길을 실제로 걸어간다는‘도닦음’의 행도(行道, patipadā)가 그 둘입니다.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는 앞의 것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도성제(道聖諦)와 중도는 뒤의 것입니다.  
‘각묵’스님은 용수보살을 위시한 중관학파에서 주창하는 팔불중도(八不中道)는 팔정도의 첫 번째인 정견(正見)을 말하는 것이지 팔정도로 정의되는 도 닦음으로서의 중도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지금·여기’에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총체적으로 조화롭게 개발되어 나아갈 때 중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화엄’에서는 상극(相剋) 투쟁하는 양변(兩邊)을 버리면서 양변이 융합하고, 양변이 융합하면서 양변을 버리는 쌍차쌍조(雙遮雙照)를 중도라 합니다.“가고 옴에 서로 원인이 되게 하라”는 육조 스님의 가르침을 중도라 말하기도 하고, 마조 스님의‘평상심’을 중도라 표현하기로 합니다. 성철 스님은‘연기’를 중도라 말씀하셨습니다. 
연기의 원리에 맞게 사유하고 거기에 기초하여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해탈, 열반을 향해 나아갈 때 중도가 현존합니다.  
즐거움 또는 고통이라 하는 것은 짝을 이루는 상대적인 것으로 인연에 의해 생긴 유위법(有爲法)에 불과합니다. 세존께서는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도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쟁의 법이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바른 도 닦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쟁(無諍)의 법이다.“라고…
탐욕 또는 분노의 불을 끄기 위해 육체적 고행을 하는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예컨대‘삼보일배’,‘소신공양’,‘매일 삼 천배 절하기’등을 통해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려고 용맹정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자기학대 수행법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세존께서 전생에‘마하고윈다’바라문이었을 때 팔정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열반을 실현하지는 못하고 그 제자들에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만을 가르쳤다고 초기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부의 「깟사빠 사자후 경」 등에서는 팔정도는 불교에만 있는 가장 현저한 가르침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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