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들었을 때 소소영영함 없으면 공부 아닌 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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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들었을 때 소소영영함 없으면 공부 아닌 줄 알아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8.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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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마음의 지성智性이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어서 오온의 몸속에서 주인이 된다고 말하니, 이렇게 선지식 노릇을 하면 사람을 크게 속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묻노니, 만약 소소영영함을 오인하여 너희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잠잘 때에는 또 소소영영함이 되지 않느냐? 만약 잠잘 때에 소소영영하지 않다면 도둑놈을 오인하여 자기 자식이라 부르는 것이니,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며 망상연기이다. 『현사사비선사어록』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주 소소영영한 영대지성이 있는데, 그것은 능히 볼 수도 있고 능히 들을 수도 있어서 색‧수‧상‧행‧식의 오온신五蘊身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본체가 무엇인가 하면 소소영영한 영대지성靈臺智性입니다. 
이렇게 선지식 노릇을 하면 사람을 크게 속이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내가 너에게 묻노니, 어째서 잠 잘 때에는 또 소소영영함이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참으로 소소영영한 이것이 너의 본성이고, 이것을 가지고 네가 선지식이라 한다며 너는 왜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는 소소영영한 것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소소영영하다고 하든 현현묘묘玄玄妙妙하다고 하든 어떤 형용사를 쓰든 관계없습니다. 만약 어떠한 경계를 성취하고 어떠한 공부를 성취했다 해도 잠이 깊이 들었을 때 그것이 없어진다면 그런 소소영영한 경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도둑놈을 자기 자식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며, 이것은 생사의 근본이고 망상의 연기이지 근본자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사 스님의 말씀인데 현사 스님이 여기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사玄沙 스님은 설봉(822~908)스님의 제자인데, 선에만 통달한 분이 아닙니다. 경‧율․론 삼장에 회통한 분입니다. 그래서 당시 학인들이 선에 대해서 질의했을 뿐만 아니라 교리에 있어서도 분쟁이 생기거나 하면 반드시 현사 스님께 찾아와 의견을 묻고, 현사 스님 의견을 따라 모든 것을 처리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불교집안의 최고 재판관이고 권위자였습니다. 
현사 스님도 늘 하신 말씀이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크게 성취하고 무슨 법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실제 체득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소용이 없고 실제이어야 하는데, 그 체득의 표준을 어디에 세워야 하는가? 아무리 큰 경계를 성취했다 해도 대개 보면 깊이 깨치지 못하고 망념의 근본에 서서 도적을 아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깊은 잠에 빠지면 그 심오하던 경계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부처 이상 달마 이상의 큰 경계를 성취하고 큰 법을 성취한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잠이 들면 그 경계가 나타나지 않고 사라진다면 그것이 근본적으로 공부를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사 스님이 고구정녕하게 입이 쓰도록 오매일여, 즉 깊은 잠이 들었을 때의 경계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다 보면 흔히 인적위자認賊爲子, 즉 도둑놈을 자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도둑놈을 자식으로 잘못 알면 그 놈에게 손해나 보지 이익은 없습니다. 그것은 참 공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아예 공부한 것으로 취급하지 말고 깨끗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좀 어렵습니다. 보통 공부하다가 한 생각이 나면 ‘이것이 견성이 아닌가? 이것이 성불이 아닌가? 견성성불은 아니라 해도 내가 제법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 그 공부의 진위를 판단할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것 같고 잘 된 것 같다 해도, 잠이 깊이 들었을 때 소소영영함이 없으면 통째로 공부가 아닌 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박산 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이것이 술지게미 퍼먹고 취한 놈이니, 잠잘 때에 이미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생사가 닥쳐올 때에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한평생을 공연히 쓸데없이 보내니 어찌 다른 사람만 웃길 뿐이겠는가. 스스로도 우스울 것이다.” 『참선경어』

이것은 박산 스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술지게미 퍼먹고 취한 놈은 순전히 망상연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잠이 깊이 들었을 때는 이미 주인노릇을 못합니다. 깊이 잠이 들면 공부가 없어집니다. 
생사가 닥쳐올 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소용없습니다. 일생동안을 공연히 쓸데없이 이리저리 보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만 웃길 뿐 아니라 자기도 웃을 것입니다. 
결국 누구든지 잠이 깊이 들었을 때 공부가 안 되면 그것은 생사근본일 뿐이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는 체하고 이리저리 내세운다면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그러니 누구든 잠이 깊이 들었을 때 이를 증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실제로 공부가 안되거든 아예 아는 체도 하지 말며, 누구 돌아볼 것도 없고, 공부라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 없이 공연히 쓸데없이 망상연기와 생사근본을 가지고 공부인 체 했다가는 저 망하고 남 망치고 다 망해버립니다. 

담당湛堂 스님이 대혜大慧 스님에게 말하였다. 
“종고상좌여, 네가 일시에 나의 법을 이해하였으니, 너에게 설법을 하라면 설법을 잘하며, 염고.송고.소참.보설을 하면 네가 잘하나, 한 가지 일이 아직 있지 않다. 네가 뚜렷하게 생각할 때에는 선이 있으나 잠들기만 하면 없으니, 만약 이렇다면 어찌 생사를 대적하겠는가. 
대혜 스님이 대답하였다. 
“바로 제가 의심하는 것입니다.”    『종문무고』

대혜 스님의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혜 스님을 통해 아무리 자기의 지견이 높고 경계가 깊다는 생각이 들어도 잠이 깊이 들어서 공부가 안 될 때는 공부가 안 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대혜 스님은 총명하기가 보통사람을 훌쩍 뛰어넘은 분입니다. 17살에 출가하여 19살에 어록을 보다가 스스로 깨쳤다고 여기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큰스님들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자기만 못한 것 같았습니다. 어찌 총명한지 그 입을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담당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담당 스님은 진정극문眞淨克文 선사의 제자입니다. 당시에 오대사五大師라고 하여 천하에 이름난 대표적인 선지식이 다섯 분이 계셨는데, 오조법연 선사 휘하의 삼불인 원오극근‧불안청원‧불감혜근 스님과 담당 스님, 그리고 담당 스님의 사촌 되는 황룡사 황룡사심 선사입니다. 그 중의 한 분인 담당 스님을 찾아가 자기가 성취한 공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담당 스님이 “종고상좌야.”라고 부른 후 지금까지 공부의 잘못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를, “나에게 와서 네가 단박에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설명해 보라 하면 네가 다 설명하고, 또 무슨 법문에 염을 하라, 송을 하라, 소참 법문을 하라, 보설을 하라 하면 네가 그것을 다 할 줄 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대혜 스님의 보설․소참․염고․송고 등을 담당 스님이 옳다고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네가 다 아는 척한다는 꾸지람입니다. 
대혜 스님이 불법에 통달무애했다고 다 아는 것처럼 천하를 횡행하며 기고만장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딱 한 가지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담당 스님이 보기에 대혜 스님이 성성히 생각할 때는 선이 있지만 잠이 들기만 하면 그만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이 무슨 경계를 성취했는지 무엇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성취했다고 하는 그것이 성성히 사랑할 때는 있지만 잠이 들기만 하면 없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생사를 대적해 낼 수 있겠느냐며 대혜 스님을 크게 나무랐습니다. 우리의 근본 목적은 견성하여 생사를 해탈하여 생사에 자재해야 하는데, 잠이 들기만 하면 안 되니 생사가 도래할 때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자 대혜 스님이 “그게 바로 제가 의심하는 곳입니다.”라고 항복했습니다. 이것이 천고千古에 유명한 대혜 스님의 공부법입니다. 사실상 자기가 아무리 아는 체하고 아무리 도도한 체하더라도 자기 양심을 속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 깨쳤다면 모르지만, 깨치기 전에는 누구든지 잠이 깊이 들면 그 경계가 사라집니다. 자기가 그런 줄 알면 다시 발심해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줄 알고도 남을 속이려 든다면 참 곤란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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