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수필 - 붓다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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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수필 - 붓다령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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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시인 · 한국화가
김대규시인 · 한국화가

몸은 정신을 담은 바구니같네

사람들은 정신에 비해 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몸은 그 자체가 신비하기 짝이 없는 우주와도 같다.
우리 인간이 현대의학으로 치료되어지는 모든 질병 중에서 자연적으로 치료되는 비율이 인간의학에 의한 치료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이 불치병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포기한 병들이 무수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생긴 크고 작은 많은 병들을 스스로 치료하는 내 몸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신기해 할 때가 많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경험해 본 일일 것이다. 이럴 때 내 몸에게 말해야 한다. “내 몸아! 내 몸이 되어주어서 고맙구나. 수고했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붓다께서는 자학적인 수행은 금지하셨다. 수행을 한답시고 고기와 생선을 멀리하고 따뜻하게 입지 않고 쑥대머리를 하고 씻지 않고 수행을 한다는 많은 사람을 봐왔다. 그런데도 그 의문이나 수행의 완성을 다하지 못한 것은 자명하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너의 의무는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필요한 일상생활의 영위와 고마워하고 만족해하며 그 만족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고 적당히 먹고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그것이 중도이고 중화이니라.”
자신의 몸에 귀 기울이고 자기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행이 되는 것이다. 
수행을 빙자한 지나친 단식이나 과식, 과로는 소중한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고 자애할 줄 모르는 무지한 악행일 뿐이다. 이것저것 난립하는 분별없는 유혹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차단하지 못해서 생긴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은 탈진하게 되어 포기하거나 실패하거나 병들게 되어 삶에서 낙오하게 될 것이다. 
분별하는 나의 결단력은 스승이 되고 주저 없는 실천력이 재산이 되며,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천국과 행복의 삶이 갖추어 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두어 시간 느슨한 경사로 비탈진 길을 느긋한 마음으로 행복해 하며 달리고 달린다.


과오 안에도 지혜가 있네

“내가 사는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별개로 분리하여 다른 개체로 인식하게 되어버린 원인이 있다”라고 ‘잡아함경’에 나와 있다. 무슨 소리인지 얼핏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가만히 보면 매우 보편적인 계산이다. 
우리 모두가 싫어하지만 필수처럼 갖고 있는 이기주의가 그 원인이고 문제가 되는 그 ‘에고’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는 의도적으로 선한 마음을 유지하고 행복의 갈망을 충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도 세상과 내가 이미 분리된 개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악과 불행을 자행하면서 세상과 나를 분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 이로운 일이나 나에게 불리한 일을 행할 때 그것이 선한 일이거나 악함을 가리지 않는 것이 수행에 의한다는 것을 수행자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은 모든 것에 우선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수행한 어떤 스님이 파계를 했다. 많은 스님들이 일시에 비난하고 성토하여 그 스님을 추방했다. 그 스님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니 마침내 많은 스님들의 의견이 반분하여 크게 다투며 시끄러웠다. 
바로 이때 우리의 주인님이 나타나셨다. 
붓다께서 스님을 추방한 무리를 찾아가 근엄하게 한마디 하셨다. 
“오랜 기간 수행하여 도에 밝으신 스님을 눈앞의 작은 허물 때문에 미워하다 못해 그를 쫓아낸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이다. 이는 화합과 인화를 해치는 어리석은 악행이니라.” 
명백한 증거가 있는 허물일지라도 이를 포용하고 타일러서 불찰을 이해시켜서 반성하게 하고 시정하게 하는 것이 수행자로서 수행의 근본이란 것을 강조한 대목인 것이다. 
분별없는 감정으로 무리하여 합당한 절차 없이 단죄하고 불신하고 미워한다면 그 자체가 분쟁의 씨앗이며 수행 자세에 반하는 처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자가 어디 있으며 그걸 아는 자라 한들 모두가 올바른 처사를 실천하는 것 같지 않다. 
단지 스스로 자중하고 억제하며 선한 마음을 증진하는 노력이야말로 수행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편안함과 고요함은 그 속에 있는 것 같아 거기 머물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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