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와 부동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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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와 부동산 사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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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현 - 제주불교문화대학 사무처장
이도현 - 제주불교문화대학 사무처장

복덕방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인중계사를 업으로 하는 친구가 저녁에 보자고 한다. 제2 공항 건설에 대한 소문이 나자 투기 열풍이 불면서 여기저기서 땅을 사겠다는 투기꾼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말을 안해도 짐작이 가지만 그는 팔 생각이 전혀 없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밭에 가보지 않으면 발이 근질거리는 성격이라 딱히 할 일이 없어도 그냥 밭에 간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전혀 없는 그로서는 고향 시골 동네에서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서울로 상경하여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다. 그 당시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땅은 길도 나 있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는 변지나 아니면 황무지에 가까운 박지 밖에 없었다. 토굴에 가까운 초암을 지어놓고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맨 몸으로 자생한 가시나무 등 잡목들을 자르고 돌을 파내고 자갈을 치우는 힘든 작업을 하며 일구어 놓은 땅이라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그의 땅은 넓은 도로가 생겨 통행이 편리해지고 수도 전기 시설들이 들어오면서 가치가 많이 높아졌는데 공항을 짓는다는 소문에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그로서도 당혹스럽고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대지 위에 지상 2층짜리 창고를 겸한 농가주택을 지어 여러모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정전가위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간다. 노지 감귤을 재배한지 30년이 넘었지만 그가 생산한 감귤의 품질이 좋아 맛있는 상품으로 인정받아 우편주문으로 거래되는 것이 절반이 넘어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어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이런 품질 좋은 감귤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많은 시행착오와 숫한 역경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그로서는 넓은 감귤 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창고지기로 구입한 진돗개 어린 것이 이제는 중새끼가 다 되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 다닌다. 많은 정이 들어 이제는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밭일을 마치고 짐에 돌아오니 중개업을 하는 친구가 벌써 와 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지만 제 2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최근에는 사이가 뜸해진 편이다.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동네에서도 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라져 인심이 예전 같지가 않음을 느낀다며 조심스럽게 지지운동에 서명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에 내심 반대하는 편이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아 마지 못해 서명한다. 땅에 대한 이야기를 까내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그 땅에 대한 애착을 잘 아는 친구의 입장에서 말을 꺼낸다 해도 거절 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친구가 돌아가고 TV를 켜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태로 화면을 가득 매우고 있다. LH 직원들의 내부 망에 올라 온 글에 흥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있다. 공직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저열한 인식과 윤리의식 실종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정부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부동산 투기 세력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감귤 농사 이외는 생각해본 적 없는 그로서는 부동산 투기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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