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0) 신장 위구르자치구 쿠차(庫車)의 키질(克孜爾)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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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30) 신장 위구르자치구 쿠차(庫車)의 키질(克孜爾) 석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1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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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제38굴 중심주굴 전실 전경
(사진 1) 제38굴 중심주굴 전실 전경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들어봤다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이 문구는 인도에서 전해진 경전을 쿠차 출신의 역경승 구마라집(344-413, 鳩摩羅什, 쿠마라지바)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글자를 옮기지 않았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에는 독특한 문체와 운율이 담겨져 있어서 그대로 직역하면 그 언어가 갖는 아름다움을 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전에 담긴 의미를 최대한 살려 의역을 했다. 구마라집은 어려서 인도로 가서 불교를 공부하며 산스크리트에 능통했고, 쿠차로 돌아온 청년기 때 후량(後涼, 386-403)을 세워 왕이 된 여광(呂光)에게 사로잡혀 양주(오늘날 무위)로 끌려가 살면서 중국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렇게 두 가지 언어를 잘 알았기 때문에 각 언어가 갖는 특징을 살려 의역할 수 있었다. 300권에 달하는 경전을 번역하여 진제(眞諦), 불공(不空) 그리고 당나라의 현장(玄奘)과 함께 4대 역경삼장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쿠차의 키질석굴에는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서있다. 

(사진 2) 키질석굴 중심주굴 구조
(사진 2) 키질석굴 중심주굴 구조

 

키질석굴은 3세기경부터 위구르인들이 그 지역을 차지한 9세기 중엽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2~3㎞ 정도 길게 늘어진 계곡의 안쪽과 동서쪽에 236개의 굴이 만들어졌다. 서쪽의 굴들이 좀 더 일찍 만들어진 것으로 대부분 3~4세기의 굴들이고, 동쪽의 굴은 대부분 6~7세기에 조성되었다. 
석굴은 쓰임새와 구조에 따라 크게 승방굴, 방형굴, 중심주굴로 나뉜다. 승방굴은 말 그대로 승방, 승려가 생활했던 공간으로 거실과 작은방으로 이루어졌고, 방형굴은 사각형 방으로 승려들이 학습하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중심주굴은 예불을 위한 공간이다. 중앙에 커다란 기둥이 석굴을 받치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여서 중심주굴(사진 1)이라 불리는데, 석굴이 조성된 곳의 바위 재질이 모래가 굳어서 이뤄진 약한 사암 계통이어서 석굴 중앙을 파지 않고 기둥처럼 만들어 지탱케 한 것이다. 만드는 순서는 먼저 사각형의 전실을 판 후, 안쪽 전면의 중앙을 남겨두고 좌우 양쪽으로 통로를 만들고 뒤에 다시 직사각형의 후실을 조성하였다. 전실 안쪽의 중심주에는 감을 만들어 불상을 안치하고, 탑돌이처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예불할 수 있게 만든 구조(사진 2)이다. 천장은 대부분 둥근 원통형(궁륭형)인데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다른 벽면들에 비해 벽화가 덜 파손되었다. 천상 장면과 비천도(사진 3)가 그려져 있다. 

(사진 3) 키질 제30굴에 그려진 비천
(사진 3) 키질 제30굴에 그려진 비천

 

이러한 중심주굴에는 벽 곳곳에 벽화가 그려졌다. 비록 여러 차례의 서양 탐험대와 종교가 다른 지배자나 무지한 지역민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남아있는 일부 벽화들은 천 몇 백 년의 연륜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현재 남아있는 벽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벽화의 주제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된 불전도와 본생도, 열반도, 미륵보살설법도 및 공양자 그림이 주를 이룬다. 본생도로는 굶주린 호랑이 가족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한 마하살타본생, 자신에게 도망쳐 온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독수리에게 자신의 살을 떼어준 시비왕본생, 월광왕본생, 선사태자본생 등 잘 알려진 주제의 본생도들이 그려졌다. 다만 이야기의 여러 장면을 만화처럼 표현한 둔황 막고굴 본생도와 다르게 각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만을 그렸다. 즉 제11굴 마하살타태자본생의 경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살타태자와 그 아래 굶주린 호랑이들이 태자의 몸을 먹는 장면(사진 4)만 묘사하였다. 

(사진 4) 제11굴에 그려진 호랑이에게 몸을 보시하는 마하살타태자본생도
(사진 4) 제11굴에 그려진 호랑이에게 몸을 보시하는 마하살타태자본생도

 

키질석굴 중심주굴의 특징 중 하나는 후실에 열반도가 그려진 점이다. 57개의 중심주굴 중 37개의 굴에 열반 관련 그림이 그려졌다. 전실에 비해 훨씬 어두운 후실에 그린 것은 아마도 열반을 죽음이라는 의미와 연관 지어 생각해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열반도(사진 5)는 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화려하게 장식된 목관 안에 앞을 향해 옆으로 누운 석가모니와 그 위로 옆면이 삼각형으로 된 관 뚜껑을 살짝 들어 올린 모습으로 그려졌다. 석가모니는 청색, 녹색, 적색, 갈색 등 여러 색으로 짜인 법의를 입고 있고, 관 뚜껑 위로는 화염이 표현되었다. 주변에는 가섭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스승의 열반을 애도하고 있다. 배경에 무거운 색조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주지만 음영이 표현된 석가모니의 얼굴은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사진 5) 키질석굴 열반도
(사진 5) 키질석굴 열반도

 

중심주굴이 탑돌이처럼 시계방향으로 돌며 예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전실에서 예불을 드리고 시계방향으로 후실로 들어가 열반도를 본 후 전실로 돌아 나오면 환한 입구 바로 위쪽에 설법도와 마주하게 된다. 설법도(사진 6)는 다리를 교차해 앉은 교각보살상으로 주변에는 여러 명의 천인들이 합장하고 앉아 설법을 듣는 구도이다. 중앙에 크게 그려진 교각보살에 대해 학자들은 도솔천에서 하생을 기다리는 미륵보살로 본다. 도솔천에서 머물다 말세가 되면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불이 되기 전 보살의 모습이다.     
 현생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다 열반한 석가모니와 미래에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의 조합은 과거 거대한 석불이 탈레반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안타까움을 전했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바미얀석굴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합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의 발로가 아닐까?  

(사진 6) 키질석굴 중심주굴 입구 윗면에 그려진 미륵보살설법도
(사진 6) 키질석굴 중심주굴 입구 윗면에 그려진 미륵보살설법도

 

언제고 실크로드의 보고, 키질석굴에 가게 되면 한두 끼 식사를 아껴서라도 일반에게 공개되는 기본 굴 외에 한두 개의 특굴을 신청해서 보고 오시길 권한다. 그리고 석굴 입구에 서있는 구마라집의 동상에 고마움을 표하길.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을 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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