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선생의 간다라 불교미술 - 영기화생론의 세계 ③ “간다라 조각은 인도고유의 도상과 심볼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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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선생의 간다라 불교미술 - 영기화생론의 세계 ③ “간다라 조각은 인도고유의 도상과 심볼을 계승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1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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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의 대가 강우방 선생의“불교미술 - 영기화생론의 세계”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강우방 선생은, 인류가 진리의 이르는 길을 위한 사유체계가‘문자언어’에 의한 것과‘조형언어’에 의한 것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궁극의 진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인류는 수 만 년을 조형언어를 통해 인류의 상징체계를 확립해 왔다고 강조하면서, 평생의 미술사학 연구를 통해 홀연히 깨달은 영기화생론의 체득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진리에 이르는 핵심 진리로서의‘조형언어’의 세계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강우방 세계조형사상연구원장/1941년 만주 안동(단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 고고인류학과를 수학하고 교토와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동양미술사 연수 및 미국 하버드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경주박물관장 및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교직에서 물러난 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설립해 세계조형예술의 비밀을 풀어가고 있으며, ‘영기화생론’을 정립해 조형언어를 통한 진리의 경지에 이른 후 그 연구 성과를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 ‘민화’,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원융과 조화-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1’, ‘법공과 장엄-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2’,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감로탱(공저)’, ‘미의 순례(에세이집)’,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등이 있다.
강우방 세계조형사상연구원장/1941년 만주 안동(단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 고고인류학과를 수학하고 교토와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동양미술사 연수 및 미국 하버드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경주박물관장 및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교직에서 물러난 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설립해 세계조형예술의 비밀을 풀어가고 있으며, ‘영기화생론’을 정립해 조형언어를 통한 진리의 경지에 이른 후 그 연구 성과를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 ‘민화’,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원융과 조화-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1’, ‘법공과 장엄-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2’,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감로탱(공저)’, ‘미의 순례(에세이집)’,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등이 있다.

 

필자는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인도인 학자, 하버드 대학원 교수와 함께 인도 미술을 논의했다. 배웠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그 ‘프라모드 챤드라’ 교수는 간다라 미술은 인도 미술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힌두 미술에 기울어진 그의 학문 태도는 불교 미술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듯 했다. 독학을 해 나가면서 그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보스턴 박물관에는 인도의 마투라 불상들과 간다라 불상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자주 갔었다. 작품들 자체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마침 지도교수인 ‘죤 로젠필드’ 교수는 원래 인도 미술 전공으로 뛰어난 학자였으나 일본 미술 전공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필자는 그 당시 영어로 인도 미술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주제로 논문을 2편 썼다. 그 2편은 귀국하자마자 한국어로 바뀌어 논문으로 발표헀으며, 훨씬 뒤인 1999년에 출판된 논문집『莊嚴과 法空』에 실었다. 그러나 이미 1995년『한국 불교 조각의 흐름』이란 개설서 서두에 아마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자적 연구를 통한 인도 미술의 간단한 전개 과정을 실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이르는 불상 전개의 총체적 과정을 함께 기술했으며, 불상 연구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들은 서양이나 일본 학자의 저술을 정리한 것이 아니고 필자가 인도와 중국 불상 작품들을 직접 조사하며 알아낸 내용이다.

간다라 보살상. 앉은 자세가 특이하다.
간다라 보살상. 앉은 자세가 특이하다.

 

그 후 인도 미술의 전공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도 미술 특히 인도 불교조각을 연구하려면, 인도의 마투라 조각과 간다라 조각을 반드시 함께 연구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마투라 조각은 그 이전의 힌두 사상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간다라 조각은 마투라 조각은 물론 그리스와 로마 조각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또 중국의 불상과 한국의 불상을 모두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미술사학은 美術史의 ‘史’란 말 때문에 ‘미술의 역사’라는 개념이 강하여 미술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불상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지루하게 반복하거나 동서양 학자들의 연구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선행 연구자들의 내용을 정리하는 수준에만 그치고 있다. 즉 인도 조각의 본질을 다룬 글은 거의 없으며, 다루어도 오류가 많음을 알았다. 『한국불교조각의 흐름』에 인도의 마투라 조각과 간다라 조각을 비교하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다룬 글을 쓴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필자에게는 매우 큰 학문적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간다라 지방을 돌며 간다라 조각을 새로이 조사하는 한편, 페샤와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학회 발표와 대학 강의를 여러 번 하는 동안 중요한 개념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필자는 몇 가지 key words를 찾아 연구해 온 결과, 불상을 보는 눈이 종래와 전혀 달라졌다. 동서양의 어느 학자도 이런 접근을 시도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 개인의 학설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조형들, 즉 인류가 만들어낸 건축-조각-회화-공예-복식 등을 연구하면서 얻은 성과이므로 개인적 의견이 아니고 보편적 진리라고 확신한다. 무릇 ‘부분’을 연구하려면 ‘전체’를 연구하여 ‘전체’의 가운데서 ‘부분’을 살펴야 한다. 20년 전 글에서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진리를 조형 예술 연구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글들은 인도 조각을 다루면서 필자가 처음 찾아낸 조각 행위의 근본 원리이므로 세계 학계에 큰 경종을 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다라 불상.
간다라 불상.

 

현재 세계 미술사학의 연구 경향은 간다라 미술이 중앙아시아 미술의 범주에 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인도 미술이 아니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도 미술이나 간다라 미술의 도상적 주제는 같으나 양식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인도학자들은 간다라 미술은 인도미술이 아니라고 하며, 최근 일본 소학관(小學館)에서 역사적인 『세계미술전집』을 출간헀는데, 인도미술에 포함시키지 않고 중앙아시아 미술에 포함시키고 있다.
마투라 불상은 순전히 인도 전통 위에 이루어진 조형이고, 간다라 불상은 인도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스키타이와 사산 왕조 등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서 문화사적으로 중앙아시아 미술의 범주 안에 들지도 모른다. 간다라는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자리 자았던 고대 왕국 가운데 하나다. 주요 도시는 푸르샤프라(현대의 페샤와르)와 탁샤실라(탁실라)가 있다. 이 왕국은 기원전 6세기에서 서기 11세기까지 지속되었는데 1세기에서 5세기까지 불교도였던 쿠샨 왕조의 왕들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헬레니즘의 영향이 크므로 ‘그리스-불교 미술’ 혹은 ‘로마-불교’ 미술이라 부르지만 어차피 인도 미술의 본질을 따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인도 미술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이 들어가 보면 그저 ‘인도의 불교 미술’이지 그리스˙로마 미술의 요소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인 왕조가 멸망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인들은 토착화되어 갔고,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다수의 토착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서두에서 ‘미린다 빵하’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불교 사상은 불상이 만들어지기 훨씬 오래 전부터 퍼져 갔으며 불교의 조형적 특징과 사상적 특징을 파악하고 있던 것은 그리스, 로마,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보편적 진실들이 있으므로 상호 융합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간다라 조각 가운데에는 그리스 도상들과 같은 것들이 많아 그리스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불상의 도상에 관한 한, 인도 고유의 ‘약쉬’의 자세를 싯다르타 태자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그대로 취하고, 수많은 심볼들은 모두 인도 고유의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 식민지가 있었던 지역이긴 하지만 그 주민들은 이미 토착화되어 인도의 사유 방식을 익혀 지녔다고 보여진다.    (다음 호에 계속)

마투라 출토 약쉬 입상
마투라 출토 약쉬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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