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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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昊然) 스님이 엮은 회옹혜경(晦翁惠耕) 스님의 새로운 법화경 해석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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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은 참선(參禪)을 하지 못하는 출 . 재가불자의 수행(修行) 지침서(指針書, 보살행 실천의 가르침)이다.

대승경전의 금자탑인 법화경에 대한 혜경 스님의 해석법문을 연재합니다. 혜경스님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출가하여 평생을 경전연구와 집필활동에 매진하였습니다. 혜경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새로운 주석에 대하여 이 분야에서 뛰어난 법문을 전하신 호연 스님이 편역하여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법화경에서 최고의 권위가인 두 스님의 소중한 강설을 소개하게 되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호연(昊然) 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원 석사, 중앙승가대 대학원 박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재단법인호연 이사장. 서울정혜선원·도봉사 주지이며 중앙승가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현재 BTN불교TV에서 호연스님의“행복나무에 핀 법화경”방송을 강의중에 있습니다. (매주화요일 오전8시30분/오후5시,일요일오후8시방영)
   
 

법화경 약찬게
법화경 약찬게

 

해제(解題)
『법화경』의 원래 이름은 싼쓰끄리뜨, 즉 범어(梵語)의 ‘삿다르마⋅뿐다리까․수뜨라(Saddharma-puṇḍarika-sutra)’이다.
‘삿다르마(Saddharma)’는, ‘삿뜨(Sat)’와 ‘다르마(dharma)’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삿뜨’는 ‘진실(眞實)한’, ‘바른(正)’, ‘훌륭한(善)’, ‘뛰어난(勝)’ 등의 뜻을 가졌으며, ‘다르마(dharma)’는,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중국에서는 ‘법(法)’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말에는 대략 네 가지의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사물(事物)’ 즉 ‘정신적 현상(精神的現象)과 물질적 현상(物質的 現象)’을 통틀어 가리키는데, 경전에서는 이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할 때의 ‘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물’이라는 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의 물질과 생명체 및 우주에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을 말한다.
 두 번째는, “그러한 사물을 존재토록 하며 혹은 살려주고 있는 근본적인 근본생명(根本生命)” 또는 “그러한 사물, 즉 물질적․정신적 현상을 꿰뚫고(貫通) 있는 절대적인 진리” 등도 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니, ‘법계(法界)’라던가 ‘법성(法性)’ 등의 ‘법’이 바로 그것이다.
세 번째는, 그 절대 진리이며, 근본생명(根本生命)이 우리가 눈으로 본다든가, 귀로 들을 수 있는 현상으로 나타날 때는 일정한 규칙에 지배된다고 하는 그 ‘법칙(法則)’이라는 뜻도 있으니 현재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법’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은 뜻이다.
네 번째는, 그 진리나 법칙을 바르게 설하는 ‘가르침’이라는 뜻도 있다. ‘불법(佛法)’이라고 할 때의 ‘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삿뜨’와 ‘다르마’를 합친 ‘삿다르마’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중국의 축법호(竺法護, 다르마라끄샤(Dharmaraksa)는, ‘정법(正法)’이라 번역했고, 네덜란드의 케른(Kern)이 영어로 번역한『법화경』에서는 ‘진실한 법’으로, 또 프랑스의 부르뉴프(Burnouf)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은 ‘훌륭한 법’으로, 일본의 이와나미(岩波) 문고(文庫)의 범어(梵語) 번역판은 ‘바른 가르침(의 백련화)’으로 되어 있으며, 같은 이와나미 서점(岩波 書店)의 범한일어대조(梵漢和語對照) . 현대어역(現代語譯) 법화경(法華經, 植木雅俊. 2008. 3. 11. 발행)에는 “백련화(白蓮華)처럼 가장 뛰어난 바른 가르침”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은 ‘묘법(妙法)’으로 번역하고 있다. 
‘법(法)’이라는 말에는 앞서 말했듯이 대략 네 가지의 뜻이 있지만, 그 네 가지는 결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즉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근본생명(根本生命), 또는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절대(絶對⋅無爲法)에서 나타난 것이며, 그 근본생명을 진여(眞如)라고도 하고, 진리라고도 하며 이를 인격화하여 이름하여 부처님(佛), 다시 말해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本佛)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의 참모습(實相)을 가르친 것이 불교이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우주에 있는 모든 현상의 나고 죽음(變化)과 그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도 진여이고 진리이며 실상이다. 또 그 진리와 법칙 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설한 가르침도 또한 실상이다.
요컨대 우주의 근본생명이라던가, 진리라던가, 실상이라던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던가, 하는 것을 통틀어 말하자면, 오직 하나의 실재(實在)이며, 그 실재의 본질이나 성상(性相)이나 작용을 여러 가지의 말로 표현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법’이라는 말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무변한 뜻이 함축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삿다르마⋅뿐다리까⋅수뜨라’에 설해져 있는 가르침(法)은 이처럼 광대무변한 법의 가르침이다. 이 우주의 성립에서부터 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법이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바꾸어 말한다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역할 또는 작용’ 모두가 여기에 설해져 있다. 그러므로 이 ‘법(다르마)’은 단순히 ‘바르다’든지, ‘훌륭하다’든지, ‘진실하다’든지, 하는 형용사만으로는 다하지 못할 만큼 거룩한 것이며 빼어난 것이다.
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함과 빼어남을 ‘묘(妙)’라는 한 글자에 담아서 구마라집(鳩摩羅什)은 “묘법(妙法)”이라 번역한 것이다.
 다음에 ‘뿐다리까(puṇḍarika)’는, ‘연꽃’을 말하는데 연꽃 가운데도 특히 ‘흰 연꽃(白蓮華)’을 가리킨다. 인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神聖)하고 아름다운 꽃을 흰 연꽃이라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흰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며 흙탕물에서 꽃을 피우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언제나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은 속세(俗世) 즉 진흙에서 생활하면서도 속세에 물들지 않고 변화하는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아름다운 생활․자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그 가르침의 근본 사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제15장 종지용출품”의 게송에 “훌륭히 보살의 길을 배워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음이 연꽃—여기에서의 연꽃은 백련화(白蓮華, puṇḍarika)가 아니라, 홍련화(紅蓮華, Padma)이지만—이 물에 있음과 같다(如蓮華在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법화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인간이 지녀야 할 제일 목표, 즉 보살의 참모습이라 하겠다. “눈앞의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작은 나(小我)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현상 속에 겹쳐 있는 실상을 꿰뚫어 봄[觀]에 의해서, 모든 인간은 본질에서 평등함을 달관하고 그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남을 구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행(行)에 몸을 바치는 사람[菩薩]”이 바로 ‘뿐다리까’ 즉 ‘백련화(白蓮華)’라는 뜻이다.
‘수뜨라(sutra)’는, ‘꿴 실’이라는 뜻인데, 인도에서는 아름다운 꽃을 실에 꿰어 머리에 장식하는 습관이 있었으며,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줄기의 계통으로 종합 정리한 것을 ‘수뜨라’라고 했다. 중국의 ‘경(經)’이라는 말도 원래는 ‘날줄’이라는 의미인데, 그로부터 도덕 또는 성인의 말씀을 엮은 책이라는 뜻이 되었으니 매우 적합한 번역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삿다르마․뿐다리까․수뜨라’ 즉『법화경』은,『출가자나 출가하지 못해서 속세에 있으면서 현상의 변화에 현혹되지 않고, 우주의 진리에 순응하여 바르게 살며, 비록 “자기는 아직 구제받지 못하더라도 남 먼저 구제하겠다[自未得道 先度他]는 마음을 가지고 인격을 완성하여, 세상을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으로 만들어 가는 길, 더욱이 인간은 누구라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본질을 평등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설(說)한 더없이 거룩한 수행지침서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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