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4월의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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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4월의 가로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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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가로수 - 김광규 (1941~ )
머리는 이미 오래전에 잘렸다
전깃줄에 닿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로스처럼 몸통만 남아
숨막히게 답답하다
라일락 향기 짙어지면 지금도
그날의 기억 되살아나는데
늘어진 가지들 모두 잘린 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가의 수양버들
새잎조차 피어날 수 없어
안타깝게 몸부림치다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어
몸통으로 잎이 돋는다

 

김광규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75년 계간『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등 많은 시집을 출간했으며, 한양대 독문과 교수를 지냈다. 
윗 시는 봄이 되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히 가로수로 심어진 느티나무나 플러터너스,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면 잔가지뿐만 아니라 큰 가지까지 잘라낸다. 이유는 적당한 수고와 넓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일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제목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시적 화자는 그날의 기억(4.19 체험)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머리는 오래전에 잘렸고, 팔다리까지 잘린 부정적인 정황을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형상화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인지에 충격을 가하는 김 시인의 시적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잠재되었던 비판의식이 다 잘려 나간 몸통에서 잎이 돋는 순간, 깨달음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시로 읽힌다.

(오영호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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