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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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20]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4.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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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돌아가 은둔하신지 16년이 되었는데, 儀鳳 元年 丙子年 正月 八日에 이르러, 印宗法師를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그의 종지에] 합치되게 깨달았다. 이 달 十五日에 널리 사부대중을 모아 대사를 위하여 머리를 깎아주고 二月 八日에는 여러 이름 있는 대덕스님을 모아 具足戒를 주시었다.

 

南歸ᄒᆞ야 隱遯一十六年이러니 至儀鳳元年丙子正月八日ᄒᆞ야 會印宗法師ᄒᆞ시니 宗이 悟契師旨ᄒᆞ야 是月十五日에 普會四衆ᄒᆞ야 爲師薙髮ᄒᆞ고 二月八日에 集諸名德ᄒᆞ야 授具足戒하ᅀᆞ오니

【諺解】 南으로 가 숨거신디 열여슷 ᄒᆡ러니 儀鳳 元年 丙子 正月 八日에 니르러 印宗法師ᄅᆞᆯ 相會ᄒᆞ시니 宗이 師ㅅ ᄠᅳ들 마초 아라 이 ᄃᆞᆯ 十五日에 四衆을 너비 뫼화 師ᄅᆞᆯ 爲ᄒᆞ야 머리 갓고 二月八日에 여러 名德을 뫼화 具足戒ᄅᆞᆯ 심기ᅀᆞ오니 (남녘으로 가서 숨으신지 열여섯 해이더니 儀鳳 元年 丙子年(서기676년) 正月 八日에 이르러 印宗法師를 만나시니[相會] 印宗이 대사의 뜻을 맞추어 깨달았다. 이 달 십오일에 四衆을 널리 모아 대사를 위하여 머리를 깎고, 이월 팔일에 여러 名德을 모아 具足戒를 전하셨다.

【解說】⑴ ‘돌아가다(돌아오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에는 ‘歸  (//)   ’ 뿐만 아니라 ‘復    (//) ’도 상용된다. ‘復’과 ‘歸’는 그 쓰임이 같을까? 다를까? 혹 다르다면 돌아가는 대상이나 방법 등이 다른 것은 아닐까?
 ‘歸’는 『說文解字』에서 “女嫁也. 从止, 从婦省, 阜聲. (‘여자가 출가하다’이다. 止와 婦를 생략한 것을 따르며 阜聲이다.)”라고 하였다. 즉 이것은 “여자가 출가를 할 때 지나는 언덕(阜)과 발(止), 출가하는 여자(婦)[女를생략하고 빗자루 (   ) 만 그렸다] 등을 그려, 결혼한 여자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復  (//)     ’은 『說文解字』에서 “往來也. 从彳复聲. (‘往來하다’이다. 彳을 따르고 复聲이다.)”라고 하였고, 또 ‘复’은 『說文解字』에서 “行故道也. 从夊, 畗省聲.(‘옛길을 가다’이다. 夊[천천히 걸을 쇠]를 따르고, 畗省聲[소리는 畗이 생략된 소리이다.]”라고 하였다. 즉 ‘復’은 옛길을 다시 걷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歸’와 ‘復’은 모두 출가하기 전에 걸었던 친정의 길이나, 옛길을 다시 걷는 것으로 돌아온 것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두 글자의 쓰임을 비교해보면, ‘復’은 대개 ‘復舊, 復禮, 復古’ 등에 쓰이고, ‘歸’는 대개 ‘歸國, 歸鄕, 歸家, 歸泉(황천으로 돌아감, 죽음), 歸土(흙으로 돌아감, 사람의 죽음)’ 등에 쓰이는 것 들을 볼 수 있다. ‘復’은 돌아가는 대상이 ‘舊, 禮, 古’ 등과 같이 실존하지 않고 단지 인식되는 것이고, ‘歸’는 돌아가는 대상이 ‘國, 鄕, 家, 泉, 土’ 등과 같이 實存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佛典에서는 이와는 다른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면 ‘歸依三寶’나, ‘至心歸命禮’ 등을 들 수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이것들에서는 돌아가는 대상이 三寶이거나 부처님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의 “‘復’은 돌아가는 대상이 단지 인식되는 것이고, ‘歸’는 돌아가는 대상이 實存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참고로 ‘南歸’의 의미를 풀이해 보면, 혜능대사는 본래 남쪽에서 태어나 생활했으며,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六祖 慧能대사(638-713)는 唐太宗 貞觀 12년 南海新興(중국 남부지방)의 貧農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속성은 노씨이고, 三세때 아버지를 잃고 소년 시절부터 나무를 해가지고 시장에 팔아서 늙은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했다. 
어느 날, 나무를 팔고 값을 받으러 갔다가 金剛經의 “應無所住而生其心(주한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이라는 경문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이 열리며 깨닫는 바가 있어, 황매산의 五祖 弘忍大師를 찾아가, 행자가 된지 八개월만에 달마의 正法相承인 衣鉢과 敎法을 은밀하게 전수받아 六祖의 지위에 올랐으나, 스승의 지시를 따라 남으로 法難을 피해 갔다.
즉 南海新興(중국 남부지방)에서 태어나 북쪽의 황매산에 계신 五祖 弘忍大師에서 師資相承하고 스승의 지시를 따라 다시 남으로 돌아간 것이다.
⑵ ‘遯’은 이전에 살펴본 것을 다시 적는다. 
‘遯’은 ‘달아나다. 피하여 숨다’라는 뜻이다. ‘遯’은 『說文解字』에 의하면 “逃也. 从辵从豚.”라고 하였다. 흔히 ‘달아나다’라는 뜻의 글자로는 ‘逃’를 常用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굳이 僻字인 ‘遯’을 쓴 이유가 있을까? ‘遯’은 ‘从辵从豚’로서 ‘사거리(行)의 왼쪽 면(彳)에 발(止)이 놓인 辶(辵)’과 ‘豚(돼지 돈)’이 합쳐진 글자이다. 즉 글자의 모양으로 유추하건데 돼지가 길거리에서 발로 도망가고 있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6祖 혜능스님께서 5祖 弘忍대사에게서 衣鉢을 받아 도망하여 남녘에서 10여년을 숨어 지내는 것이 마치 돼지가 도망하여 숨어있는 것과 같은 신세였다는 의미가 그 단어에 內在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무식한 신참 행자인 혜능이 법의를 받았으니, 五祖 會下의 대중이 六祖를 해코자 하였으므로, 五祖께서 남쪽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⑶ 儀鳳: 唐 高宗 때의 年號이다. 儀鳳 원년은 당 고종 27년이니 고구려가 망한지 8년 후이다. 그 前年에 五祖 弘忍조사가 입적하였다. 
⑷ 會印宗法師 宗 悟契師旨: 六祖께서 五祖 弘忍祖師의 법을 전수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16년간을 사냥꾼 속에서 살던 중, 廣州 法性寺에서 열린 印宗法師의 涅槃經 설법 법회에 참석하러 갔었던 때, 무리 중 두 수좌가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깃발이 흔들린다.”거니, “아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다.”거니 하며 시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六祖께서 “그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닌 바로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고 하여 인종법사의 주목을 받고, 16년 만에 비로소 조사의 신분을 드러내어 세상에 나와 법을 펼치기 시작했던 때의 일이다. 이때의 公案이 바로 風幡問答이다.
⑸ ‘悟契’는 動補構造의 복합동사로 해석한다.
⑹ ‘四衆’은 比丘·比丘尼의 出家 二衆과 優婆塞·優婆夷의 在家 二衆을 말한다.
⑺ ‘爲師薙髮’에서 ‘爲’는 4성으로 읽히며 ① ‘…을 위하여, …을 대신하여’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것은 어떤 관심과 봉사의 대상을 나타내며, ‘而’과 連用하여 쓸 수 없고, 아래의 형태로 쓰인다. ㉠ ‘爲+名詞/名詞句/主語·述語句’나 ㉡ ‘爲+명사(名詞)+着想/考慮’의 형식으로 쓴다. 이때는 當事者를 대신해서 어떤 이익을 고려/생각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② ‘… 때문에, …로 인하여’ ③ ‘…에 대해서, …을 향하여, …에 대하여, …에게, …로’ 등과 ④ 또 2성으로 읽히면, 被動文의 被動標識로 사용되어 ‘…에게 …를 당하다, …에 의해 …하게 되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것들은 예문이 있는 곳에서 기술하기로 한다.
[예문]①-㉠ 爲國致命.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嘆曰必有大人 爲吾嗣法 乃入城 直指心體要節·彌遮迦尊者 (탄식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큰사람이 있어서 나를 위해 법을 이을 것이로다.”하고, 이내 성안에 들어가니,) 
①-㉡ 我一切都爲他着想. (나는 모든 것을 다 그를 위해 고려한다.) 
他很自私, 從來不爲别人考慮. (그는 매우 이기적이어서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⑻ ‘名德’은 흔히 명망과 덕행이 있는 사람을 일컬으며, 여기에서는 大德高僧을 말한다. 이곳의 ‘名德’은 스님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굳이 문제를 삼는 것은, ‘名德’은 본래 명망과 덕행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佛家에서는 ‘나’라고 알고 있는 五蘊도 없다고 하거늘, 하물며 그 이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大德이나 高僧 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을 굳이 名德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六祖法寶壇經에서도 오직 이 한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외 緇門警訓·書狀··禪要·佛祖直指心體要節 등에서는 이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
⑼ 具足戒: 比丘가 지킬 戒, 三師(傳戒師·羯磨師·敎授師)와 七證師로써 작법하여 수계한다. 
위를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다시 적는다.

【飜譯】남으로 돌아가 은둔하신지 16년이 되었는데, 儀鳳 元年 丙子年 正月 八日에 이르러, 印宗法師를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그의 종지에] 합치되게 깨달았다. 이 달 十五日에 널리 사부대중을 모아 대사를 위하여 머리를 깎아주고 二月 八日에는 여러 이름 있는 대덕스님을 모아 具足戒를 주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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