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칼럼 - 모든 독립운동가가 서훈을 받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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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칼럼 - 모든 독립운동가가 서훈을 받게 되기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5.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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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철 _ 제주독립운동가서훈추천위원회 자료발굴위원장

 

올해도 어김없이 삼일절이 지나갔고 임시정부수립기념일도 지나갔다. 해마다 광복절도 지나가고 순국선열의 날도 지나간다. 그 때마다 기념식도 하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긴다고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무거운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사회가, 우리 국가가 기념식 말고 정말로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2019년 삼일절을 맞으면서이다. 친한 친구 한 사람과 ‘100주년인데 그냥 넘어가지 말고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하기로 한 일은 큰 일도, 별 일도 아니었다. 독립운동가의 자취를 찾아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생가, 묘, 기념비 등을 답사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몇몇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호응해서 50여 명이 답사에 참가했으므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독립운동가의 묘에 갔는데 내가 맨 끝에 ‘안타깝게도 이 분은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하셨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당연히 참가자들이 ‘왜?’라고 물었는데 그 이유를 속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제주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거의 600분에 이르는데 서훈을 받은 분은 180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나머지 400분은 왜 서훈을 받지 못했을까?
그래서 서훈 받지 못한 분들을 서훈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없는가 조사해 봤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보훈처나 보훈청도, 광복회도 독립운동가를 찾아내어 서훈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국가(보훈처)는 서훈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 심사하여 서훈을 하거나 탈락시키는 게 임무일 뿐이었다. 법률상으로는 국가가 직권으로 서훈을 수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다시 알아봤다, 서훈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그 까닭은 첫째 신청을 하지 않아서이다. 이 경우에는 조상이 독립운동 한 사실을 몰라서 안 하는 경우가 있고, 알면서도 할 줄 몰라서 안 한 경우도 있다.
둘째는 독립운동을 한 다음 행적이 불분명해서, 즉 독립운동 후에 친일을 했거나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반대되는 행위를 해서 서훈이 거부된 경우이다. 여기에는 거증자료가 확실하지 않아서 보류된 경우도 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4·3 기간 동안에 군경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분들은 일률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이 규정은 요즘에는 다소 완화되었다.
셋째는 독립운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이다. 사회주의 계열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당시의 사회주의가 지금의 북한에 동조하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인데 이 제한은 몇 년 전에 풀려서 다행이다. 또 하나는 사이비종교·단순폭행사건·파렴치범 등으로 폄하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몇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2019년 4월에 제주독립운동가서훈추천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2년 넘게 활동을 해왔다. 후손을 찾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데 쉽지 않았다. 이사무소, 경노당을 찾아가기를 반복하고 어느 집안의 족보를 샅샅이 훑어보기도 하면서 후손을 찾아냈다. 막막했던 일이 조금씩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독립운동의 거증 자료가 확실하게 남아 있는 분의 후손들도 만나 봤고, 거증 자료를 찾기 힘든 분도 만났다. 거증 자료가 있어서 신청했으나 독립운동 후의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회신을 받은 분도 만났다.
최근에는 무극대도 사건에 집중했다. 많은 후손을 찾아내어 만나고 그 분들끼리 서훈추진위원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공동으로 공부도 하고 신청서를 만드는 과정을 1년 넘게 진행해왔다. 열여덟분이 단체로 서훈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희망적이다. 안 된다는 회신이 아니라 내년 삼일절에 서훈할 수 있도록 면밀한 심사를 하고 있다는 회신이 온 것이다.
이렇게 2년 동안 30분 정도의 신청서 작성을 도와 드렸다. 서훈이 확정되었다는 회신을 받은 것은 아직 1건에 불과하다.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350여 분이 서훈받지 못한 상태이다. 사건으로 보면 정의면 씨름대회, 추자어민항쟁으로 징역형을 받았던 분들이 아무도 서훈되지 않았다. 개인별로 보면 후손이 국내에 없어서 연락조차 할 수 없는 분들도 많다.
일을 해 보니 개인 몇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후손을 찾는 것도 일일이 찾아다니는 원시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 활동을 한 경우 어떻게 개인이 외국에 가서 그 자료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은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현재를 누리고 있는 모든 국민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제 본인은 다 돌아가셨으므로 그 후손에게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 국가(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그 후손을 찾아내고, 그 거증자료를 수집하고, 신청서도 작성해 주어야 한다. 그런 법이 없다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옳다. 법을 만드는 김에 이미 있는 법도 하나 고쳐야 한다.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으면 그 손자까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손자까지도 이미 돌아가신 경우는 명예만 되찾을 뿐 경제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법이다. 국가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늦게 서훈을 받았다면 서훈이 결정된 때부터 2대 혹은 3대까지 혜택을 주도록 해야 옳지 않겠는가! 국가가 하지 않는다면 제주특별자치도만이라도 자체적으로 조례를 만들어서 전국에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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