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24)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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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24)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Ⅲ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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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부처님께서 들숨날숨이 왜 몸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몸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지수화풍의 네 가지 근본물질로 구성된 이 몸 가운데서 바람의 요소[風大]인 몸에 해당된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네 개조(①∼④)에서는 오로지 들숨날숨만을 내관內觀하여야 하므로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라고 세존께서 설하셨습니다. 마치 송아지를 길들이는 농부가 기둥에다 송아지를 묶는 것처럼 들숨날숨(아나빠나)의 기둥에 마음챙김(sati)의 밧줄을 묶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숨의 접촉 장소인 윗입술 위나 코끝 주변에서 숨이 콧구멍을 통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자마자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와 불안 등으로 간추릴 수 있는 느낌과 생각들이 순식간에 시도 때도 없이 의식의 표면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것들 하나에 잠시 주의를 빼앗기면 호흡의 몸이 사라져버립니다. 마치 버릇없는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마음도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사띠(sati)를 놓쳐버린 것이 됩니다.
초심자에겐 들숨 날숨에 대한 사띠(sati) 확립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삼매를 개발하기 위해서 집중해야하는 곳은 바로 코끝 또는 윗입술이고, 마음에 그 표상(nimitta)을 그려내고 집중해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일으킨 생각(위딱까)의 힘이 강한 자에 속합니다. 콧구멍의 들숨날숨에 마음에 보내야 하겠다는 것은 일으킨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치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배의 중간에서 노 젖은 사람과 선미에서 키를 조정하는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하듯이 주의(마나시까라)와 의도(쩨따나)라는 마음부수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호흡에 대한 집중은 현재의 순간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가능한 한 순간 순간에 깨어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집중(定)입니다. 
일상에서 일을 할 때에도 집중은 요구되지만 이를 두고 바른 사띠[正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고양이가 쥐구멍 앞에서 쥐가 나타나자마자 덮칠 준비를 하고 모든 주의·집중을 기울이지만 이런 유형의 집중은 내적 자유에 도움을 주는 올바른 집중이라 할 수 없습니다. 
호흡명상의 유익함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된다면 마음은 코끝 또는 윗입술에 머물지 못하고, 또한 좌선 상태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의 오고감은 마음을 들뜨게 하여 대상에 고요히 머물지 못하고 흩어지게 합니다. 
만일 들숨날숨에 집중[사띠]가 잘 안되면, 『청정도론』에서는 숨을 세는 것을 권합니다. 이를테면, ‘들숨-날숨∼하나’ ‘들숨-날숨∼둘’ 적어도 다섯은 세야하고 열 이상은 세지 말 것을 권합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때 들어오고 나가는 들숨날숨이 분명해지면 천천히 헤아림을 버리고 빨리 헤아릴 것을 권유합니다.
바람(공기)이 도달하는 콧구멍의 문에 닿는 것만을 취하여 빨리빨리 헤아리고 마음이 코의 안팎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숨을 쫓아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완전한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수문장이 도시의 성안과 밖에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일일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어디로 갑니까? 당신의 손에 든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조사하지 않고 오로지 성문에 도착하는 사람들만 낱낱이 검문하듯이 콧구멍의 문에 닿는 들숨날숨만 잡도리하라는 것입니다.
호흡을 자세히 관찰하면 아주 길게 숨을 들이쉴 때 가슴은 수축하고 복부는 팽창하고, 그 반대로 숨을 길게 내쉴 때는 가슴은 팽창하고 복부는 수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빠사나의 대상이므로 호흡의 몸에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에서는 금기로 여겨야 합니다.  
배꼽은 나가는 바람의 시작이고 심장은 중간이고 코끝은 마지막입니다. 그 반대로 코끝은 들어오는 바람의 시작이고 심장은 중간이고 배꼽은 마지막입니다. 호흡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을 마음 챙기면 수행자의 마음은 흩어지면서
불편하고 동요하기 때문에 코의 안팎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숨을 쫓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흡을 조정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콧구멍의 문에 닿는 들숨날숨만을 대상으로 취해서 그대로 관찰한다고 해서 신수관[身隨觀]이라고 합니다.
‘들숨→날숨→들숨→날숨’을 반복하며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잡도리하면 수행자는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을 자연스럽게 식별하게 됩니다. 또한 호흡의 거침과 섬세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킬 때는 시원한 느낌과 숨을 내쉴 때는 따뜻한 느낌도 느낄 수 있습니다. 
호흡은 마음을 실어 나르는 수레와 같아서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면 호흡도 빨라지고 편안하지 못하나, 한편 몸의 조건인자인 호흡이 고요한 흐름에 들어가면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들숨날숨의 길고 짧음은 숨이 안팎으로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서 윗입술 위나 콧구멍 주변을 접촉하는 시간의 장단(長短) 차이에 불과합니다. 때때로 숨은 앉아있는 내내 길 수도 있고 때때로 짧을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길거나 짧게 해서는 안 됩니다. 
호흡이 길면 섬세하고 유연하며, 호흡이 짧으면 거칠어진다는 점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컨대 화가 났을 때는 호흡은 짧고 거칠지만, 긴 호흡을 하면 몸은 이완되고 성냄이 사라짐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유컨대, 유능한 도자기선반공이나 도자기선반공의 도제가 길게 돌릴 때는 나는 길게 돌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돌릴 때는 나는 짧게 돌린다고 분명히 알듯이, 들숨날숨이 더욱 더 미세하고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거듭 반복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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